[시론]박효종/'인수위 해프닝' 어디까지…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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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요란하다. 경인운하사업의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는가 하면 ‘공무원노조’ 명칭 허용 방침도 전격 결정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공약을 둘러싼 인수위와 노동부의 갈등, 대기업의 출자총액제한제 완화를 둘러싸고 나오는 여러 목소리 등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인수위의 활동들을 보노라면 한시적 기구라기보다는 상설 정책기구 같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정부가 바뀌는데 조용하기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은 넘쳐나는 개혁 의지를 주체하지 못해 일어나는 해프닝의 성격을 넘은 것 같다.

▼잇단 과잉행보 度 넘어▼

인수위는 스스로의 자화상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한시적 기구든 상설기구든, 역할이 있는 법이다. 또 스스로의 역할 지각이 있는 것이다. 혹시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기관으로 자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자 그대로 새 정부 출범을 위해 필요한 국정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인수위의 임무이고, 그것이 국민이 인수위에 바라고 있는 역할 기대일 터이다. 새 정부 준비라면 조용하게 국정을 파악하며 ‘말하기’보다 ‘듣기’에 몰두해야 할 텐데, 마치 ‘관료 길들이기’나 ‘재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처럼 과잉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스스로를 권력기관이나 정책결정기관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인수위는 권력기관은 아니지만 권력을 갖고 있는 기관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정부 각 부처나 재계, 검찰 등 관련 당사자들에게 인수위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의 초점이다. 하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권력을 행사하게 되는 인수위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권력에는 ‘군림하는 권력’도 있고 ‘봉사하는 권력’도 있다는 사실이다. 군림하는 권력의 속성은 토머스 홉스가 말한 ‘리바이어던’의 권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 권력은 지배와 종속관계가 특징인데 우리 사회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제왕적 권력은 바로 이 리바이어던 권력의 아류다. 하지만 민주사회에서 말하는 권력은 봉사하는 권력이며 이는 ‘주인과 대리인’의 관계에 비유된다. 대리인은 바로 주인의 뜻을 이행하는 데서 그 권력의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이 손안에 있소이다” 하고 외치는 듯한 인수위의 태도는 봉사하는 권력의 모습과는 다르다.

그뿐만 아니라 인수위에서 추진하는 정책이 새 정부에서 그대로 이뤄진다는 보장도 없다. 권력분립의 원칙에 입각한 민주정치는 행정부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어서 입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스스로를 ‘절반의 대통령’, 즉 ‘반(半)통령’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인수위가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전권을 가진 다수파 정부처럼 위세가 당당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인수위는 기득권 세력을 질타하는 개혁세력의 상징도 아니고, 낡은 것의 청산을 외치는 개혁의 전도사도 아니다.

다만 ‘김대중호(號)’에서 ‘노무현호’로 배의 선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교체업무를 맡고 있을 뿐이다. 이 맥락에서 업무의 파악과 준비가 중요한 이유는 정부라는 배는 선장 교체의 와중에도 정지되어 있지 않고 계속 항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장이 바뀌면서도 기존의 배가 무리없이 항해를 계속할 수 있도록 업무절차를 협의하는 것이다.

▼국정파악 본연의 자세 지켜야▼

지금은 개혁의 이름으로 잔뜩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낸다든지, 혹은 개혁적 공약을 실천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정부 관계자들을 주눅들게 할 때가 결코 아니다. 그와 같은 것들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보다 신중한 절차에 따라 다양한 의견과 여론을 수렴하면서 하나 하나 추진해 나가야 할 일들이다. 그럼에도 지금 인수위가 하고 있는 일을 보노라면 항해하는 배의 선장 교체가 아니라 마치 새로운 배를 처음부터 건조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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