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고승철/‘성장’ 원하면 기업 챙겨야

  • 입력 2003년 1월 8일 18시 30분


‘광화문에서’라는 이 칼럼의 이름대로 서울 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동아일보 사무실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서울을 사방으로 살필 수 있다.

북쪽으로 눈길을 던지면 먼 발치에 청와대 건물이 보인다. 저곳은 수십년 동안 무소불위(無所不爲) 권력의 상징인 장소가 아니었던가. 조금 가까이엔 정부중앙청사가 눈에 띈다. 이곳도 행정이란 미명 아래 온갖 규제로 민간의 창의적인 활동을 옥죄기도 한 상징적 건물이다.

정부중앙청사 뒤편에 자리잡은 생산성본부 건물에서 현재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에서 국정 과제를 다듬고 있는 열기가 여기서도 뜨겁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의욕이 과잉돼 뒷감당을 못하면 그 주름살은 두고 두고 온 나라에 퍼진다.

7일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10대 국정 과제엔 성장과 복지를 조화시키려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복지의 바탕이 될 성장 씨앗을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매우 취약한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대선 공약으로 ‘7% 경제성장률’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7%라면 엄청 높은 성장률이다. 성장과 분배, 이 두 마리 토끼 가운데 후자(後者) 쪽에 초점을 두겠다는 것이 ‘로노믹스(Rhonomics·노 당선자 경제철학)’의 기본 방향이 아닌가. 국내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올해 한국 경제가 4∼5.5% 정도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현 정부도 올해 성장률을 5%대로 전망하고 경제운용계획을 짰다.

무슨 수로 7%를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다가 인수위측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차기 정부의 5년 동안 잠재성장률 목표이지 매년 달성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한 것이다. 여성참여, 부패축소, 경제중심 국가 건설 등 여러 조건이 이뤄지면 7% 성장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양당제가 오래 정착된 구미(歐美)에서는 대체로 보수계열의 정당이 집권하면 성장쪽으로, 진보계열의 정당은 분배쪽으로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둔다. 차기 정부는 분류하자면 진보계열인데 분배쪽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고(高)성장도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은 의욕 과잉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장을 이끄는 핵심 견인차는 기업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활기를 띠어야 할 기업들이 요즘 잔뜩 움츠려 있다. 적극적으로 사업을 벌이기엔 차기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 등 상황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렇게 기업들이 국내에서 위축되어서야 세계 무대에 나가 힘을 쓸 수 있을까. 재계가 너무 겁먹는 듯하자 인수위측은 8일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재벌정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등 유화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정부가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 출자총액제한제 강화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에 재계는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굳이 재계를 두둔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한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생산의 주체이자 대부분 근로자들의 일터인 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개혁의 대상에서 왜 정부나 공기업은 중점 거론하지 않는가.

광화문 네거리는 월드컵 응원과 촛불시위로 정신적 국심(國心) 좌표를 차지했다. 여기에 모이는 시민들의 열망을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으로 충족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5년 뒤를 생각하면 ‘광화문에서’는 걱정이 많다.

고승철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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