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날마다 샴푸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19분


머리 손질에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머리 손질이 잘된 날은 일도 잘 풀리는 것 같고, 머리카락이 말을 안 듣는 날은 뭘 해도 잘 안 되더라는 둥 머리에 징크스를 이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침마다 공들여 머리를 감고 드라이어로 씨름하는 사춘기 자녀에게 “머리에 신경쓰는 것의 절반만 공부에 신경쓰면 1등 하겠다”고 잔소리했다가 꽉 막힌 구세대로 찍혔다는 엄마들도 있다. 하긴 전혀 외모에 신경쓸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머리 손질에는 무진 공을 들인다니 청소년이나 여성들만 나무랄 일도 아니다.

▷일상 속에 숨은 의미를 분석한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의 아서 버거 교수는 매일 머리를 감는 현대인의 습성이 종교적 의식으로까지 승화되고 있다고 했다. 머리의 기름때라는 ‘적’을 공격하고 머릿결의 자연스러운 순수함이라는 ‘미덕’을 회복시킨다는 의미에서다. 우리 몸은 기름때라는 공해를 생산하는 죄악의 근원이다. 샴푸는 다양한 향과 기능으로 기름때를 정화하고 깨끗한 상태로 돌려놓음으로써 머릿결을, 인간을 구원한다. 풍부한 거품은 그 지극히 약하고 부드러운 성질로 가장 더러운 것을 없애주는 역설적 힘을 가졌다. 한 샴푸회사의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젊은 도시여성의 80%가 날마다 머리를 감는다니, 그들은 거의 매일 속죄의식을 갖는 셈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매일 머리감는 것이 되레 머릿결을 해친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으니. 미국 마운틴 사이나이 의대 월터 웅거 교수에 따르면 잦은 샴푸가 모발보호에 꼭 필요한 기름기마저 쏙 빼는 탓에 더 버석거리고 손질하기도 어렵게 만든다는 거다. 피부과전문의인 바니 케넷 박사는 “도대체 미국인들은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씻는다”며 지나친 청결이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하버드대학 스콧 웨이스 박사는 좀 더럽기도 하고 세균도 약간 있으며 예방주사도 완벽하게 맞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천식이나 습진 같은 알레르기 질환에 훨씬 덜 걸린다는 ‘공중위생의 패러독스’를 주장하기도 했다.

▷너무 깨끗한 게 적당히 불결한 것보다 못하다는 과학자들의 발견은 우리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약간의 더러움은 있어야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 부지런히 움직이게 된다. 깨끗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 강박관념이 또 다른 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게 그렇듯이 지나쳐서 좋을 건 없다. 사람도 흠 하나 없이 완벽한 것보다는 어느 정도 빈틈이 있어야 가까이할 맛이 난다. 문제는 그 ‘적당한 정도’가 어디까지냐는 것이지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