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12…몽달귀신(14)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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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인혜는 손바닥으로 젖가슴을 덮었다. 두근두근, 심장이 방망이질 친다. 손바닥을 목까지 끌어올려도, 두근! 두근!온몸에 심장이 있는 것 같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인혜 언니

달짝지근하고 간지러운 목소리가 목덜미를 더듬어 인혜는 뒤를 돌아보았다. 소원 아가씨! 강가에 난 길이 마침 꺾이는 곳에 소원이 서 있었다. 멀어서 윤곽은 희미한데, 그 검은 눈은 빤히, 깜박이지도 않고 이쪽을 보고 있다. 엊그제 아침, 집을 나설 때 입고 있었던 하양 저고리와 검정 치마다. 아얏! 눈앞이 아찔한 아픔에 모든 배경이 하얗게 번지는데도 소원은 사라지지 않았다. 인혜는 얼굴을 든 채 배를 부여잡고 몸을 웅크렸다. 쏴아쏴아 나무들을 건너온 바람에 빨강 노랑 낙엽이 휘날리는데도 소원의 치마는 흔들리지도 펄럭이지도 않았다. 소원이 서 있는 장소만 주위와 단절돼 있는 것 같았다. 꾸 꾸르 꾸꾸, 산에서 새가 울었다. 꾸 꾸르 꾸꾸, 새 울음소리가 그치자 소원의 모습도 지워졌다. 심장은 경고하듯 있는 힘을 다해 방망이질하는데, 인혜의 의식은 아픔을 떠나 둥둥 떠다니고 있다. 모든 것이 멀어지는데 물소리만 또렷하게 귓전에 밀려왔다. 콸콸 콸콸, 인혜는 물소리에 이끌리듯 강가로 내려갔다, 콸콸 콸콸 콸콸.

큰 나무가 한 그루 강 속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에 기대듯 허연 덩어리가 떠 있다. 뭐지? 저게? 이불? 아니, 아니다. 하얀 개? 인혜는 고무신을 신은 채 물에 들어갔다. 무릎까지 들어갔을 때, 몸을 뒤로 젖혔다. 사람이다. 등과 뒷덜미만 물에 떠 있다. 검은 것은 댕기머리다. 사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악몽에서 깨어나려고 몸부림칠 때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사람! 살려! 살려주세요! 인혜는 물에서 나와 달렸다. 뼈란 뼈는 죄 빠져나간 것처럼 몸에 힘이 없다. 훌렁 벗겨진 고무신에 걸려 돌부리에 무릎을 찧었지만,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서 배다리 앞 철물점으로 뛰어들었다. 주인 연일이가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강을 가리킨다. 아아아, 라는 신음만 입에서 넘치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도, 아아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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