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10…몽달귀신(12)

  • 입력 2003년 1월 5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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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30년 3월, 인혜의 친정집에서 혼례를 올린 우철은 첫날밤을 지내고 신랑 다루기를 무사히 치러낸다. 10월, 산달에 들어선 인혜의 스무 살 생일날이 바로 내일이다. 그런 그 날, 소원이 저녁 시간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우철은 쏟아지는 빗속을 뛰어다니다 소원의 책보와 벼랑에서 떨어진 흔적을 찾아낸다.

“누나, 강에 떨어진 기가?” 우철은 두 손을 뻗대어 얼굴을 떼어내고는 인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 인혜는 시동생의 눈을 마주보는 수밖에 없었다.

“누나가 수영을 얼마나 잘 하는데”

“맞습니다…”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형하고 누나 찾으러 간 거제? 누나 찾아 가지고 올 거제? 쪼매만 더 기다리면 다 같이 돌아올 거제?”

“돌아올…”

“나도 찾으러 갈란다”

“안 됩니다. 옆집 영일이하고 같이 놀고 있어요. 점심 다 되면 부르러 갈 테니까”

우근은 코를 훌쩍거리며 인혜에게 등을 보인 채 툇마루에서 고무신을 신고 마당으로 내려가 대문 밖으로 타박타박 걸어갔다.

아직은 이르다, 돌아오고 나서 밥상을 차려야지 안 그러면 다 식는다. 친정 어머니가, 밥은 봄처럼 따끈하게 국은 여름처럼 뜨겁게 장(醬)은 가을처럼 상큼하게 술은 겨울처럼 시원하게 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물독이 비었으니 물을 길어오자. 괜찮다, 배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금씩 길어서 천천히 나를 테니까 괜찮다. 발끝으로 고무신을 찾아 신자, 등이 판자처럼 딱딱해지면서 하복부에 통증이 느껴졌지만 인혜는 손바닥으로 배를 어루만지면서 걸었다.

역시 아프다. 보통 때는 금방 가라앉는데, 가라앉았나 싶으면 다시 아프고, 아픔이 점점 덜하기는커녕 심해진다. 인혜는 두 세 걸음 걷고는 멈춰 서서 아픔을 지나보내기 위해 크게 깊게 숨을 쉬고는 다시 걷는다. 하늘은 옅은 파랑이었다. 마당 여기저기 고여 있는 물이 떨어진 나뭇잎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하늘도 대기도 나뭇잎도 슬픔에 숨을 죽이고 있는 우리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나, 오늘 스무 살이 되었다. 태어나고 처음이다, 아무도 축하해주지 않는 생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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