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호/햇볕정책만으론 안된다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36분


21세기 한국은 50대의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을 선택했다.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탈냉전 이후 젊은 지도자를 선택한 주변 강대국들의 추세와 그 궤를 같이하고 있다.

당선 이후 그의 첫 마디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열어나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목표 실현을 위한 전략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다. 건국 이후 우리가 이룩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발전은 한국전쟁 직후의 한미동맹 체결과 주한미군을 통한 군사전략적 안정감을 확보함으로써 그 토대가 마련되었다. 그 상황은 탈냉전 이후 현재까지도 바뀐 것이 없다. 이제 한반도의 미래는 현상유지국가 한국이 미국, 일본과의 공조 아래 현상타파국가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노 당선자의 외교적 역량은 북한 핵문제로 인해 시험대에 올랐다.

▼북핵문제 시험 앞둔 盧당선자▼

북한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마자 폐연료봉 저장시설과 핵 재처리 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 등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하고 5㎿ 원자로 재가동 준비에 착수함으로써 북한 핵문제는 ‘제2의 핵위기’로 치닫고 있다. 우선 노 당선자는 1992년의 한반도비핵화선언과 1994년의 제네바합의 틀 내에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천명해야 할 것이다. 이 원칙의 천명은 북한 핵 문제에 관한 한미일 공조체제를 구축하고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지원을 끌어내는 데 매우 중요하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위해 플루토늄 추출 작업에 들어간다면 경수로 건설사업의 중단은 물론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의한 제재 조치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북한에 분명히 해야 한다. 취임 이전부터 이러한 확고한 입장에 서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국가안보의 틀이 흔들리면서 노 당선자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국내정치적 어젠다도 효율적으로 추진해나가지 못할 것이다.

또한 노 당선자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선을 그대로 답습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정책 실행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적극 보완, 개선해 나가야 한다. 햇볕정책의 성공 조건은 북한을 햇볕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나무 그늘 밑이나 동굴 속으로 숨어 들어갈 경우 나무를 자르고 동굴을 차단시켜 북한을 햇볕에 노출되게 할 수 있는 정책적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모색하지 않고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과 같은 일방적 시혜성 정책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최근 북한의 비밀 핵 개발 시도에 의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고, 오히려 한미공조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국가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적 목적에 이용한 김대중 정부의 실책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문제를 처리해 나감에 있어서 노 당선자는 국가적 위신을 고양시키는 적극적인 노력과 동시에 우리 국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눈높이 외교전략을 추구해야 한다. 한미간 이해관계의 일치점을 찾아내고 한미동맹의 틀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국가이익을 관철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노 당선자는 자신을 지지한 20, 30대 젊은이들의 낭만적 국제정치관에 편승하지 말고 그들에게 국제정치는 이상이 아니라 냉엄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제정치 냉엄한 현실인식을▼

북한은 체제의 성격상 지도자 개인의 안보와 국가안보가 뒤섞여 있어서 북한체제의 안보 기대 수준을 충족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이 점을 유념해 즉흥적인 회담을 지양하고, 남북간 합의를 모색할 때도 사전에 국민적 합의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또한 9·11테러 이후 한반도는 주변 열강들의 기존 지정학적인 이해관계 외에도 새로운 대테러 전략이 중첩된 전례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외과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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