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연욱/'본업'방치하는 국회

  • 입력 2002년 12월 25일 19시 41분


북한의 핵문제가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94년 핵위기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16대 대통령선거를 끝낸 정치권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각 당이 저마다 대선 후유증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당 개혁 논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즉각 국회 상임위를 소집해 주무장관을 질타하던 의원들의 ‘순발력’은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현실성 없는 햇볕정책을 수정하고, 적극적으로 핵문제 해결에 나서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당 차원의 대책이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아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민주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노 당선자가 북한 핵문제 해법을 찾느라 고심 중이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노 당선자를 도와야 할 신(新)실세 의원들은 당내 문제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들은 24일 당 개혁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이는 동교동계 당 지도부를 겨냥한 당권 투쟁의 서곡(序曲)이라는 게 당 안팎의 대체적 분석이다.

원내 문제를 총괄하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도 대선 후 전화통화를 갖고 내년 1월 임시국회 소집 등에 합의하긴 했지만, 정작 ‘발등의 불’로 떨어진 북한 핵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각 당은 이번 대선의 핵심 코드로 등장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느라 골몰하고 있다. 국민이 보여준 변화 욕구에 호응해야만 정치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중앙당 축소와 국회 중심의 정치 실현 등 해묵은 개혁 방안들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최근 모습은 정치개혁이라는 화려한 구호에만 매달리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정작 여야를 떠나 국회 중심의 정치를 펼쳐야 할 상황인데도 ‘식물국회’ 상태가 오래 간다면 또다시 국회 무용론이 나오지 않겠는가.

국민은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밤새 의사당의 불을 밝히고 나라의 앞날을 논의하는 국회의원들을 보고 싶어할 것이다.

정연욱 정치부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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