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전이 이렇게 희화화돼서야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8시 33분


선택은 끝났다. 국민 모두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제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다. 아울러 이번 대선이 남긴 부끄러운 흔적들에 대해서도 한번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투표 전날 심야에 있었던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간의 공조파기문제는 우리 정치의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정략적 후보단일화에서 시작해 감정적 결별로 마감한 연극의 무대에서 국민은 철저하게 우롱당했다. 투표를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적대화한 두 집단이 유권자들에게 던져준 혼란과 허탈감은 너무도 무책임했다. 5년 동안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고 갈 국가 지도자를 뽑는 엄숙한 행사를 마치 한편의 사기극이나 코미디 정도로 격하시킨 두 사람에게 국민은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돌이켜보면 시초부터 잘못된 일이었다.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신념과 성향이 전혀 다른 이질적 집단이 유동적일 수밖에 없는 여론조사로 단일후보를 결정한 것부터가 그랬다. 민주당이 그렇게 자랑했던 ‘국민경선’ 이후 후보교체론이 나온 것도, 이 과정에서 많은 정치인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것도 결국은 여론조사 결과를 기회 엿보기 수단으로만 여긴 탓이다. 정치적 신념 없이 여론의 양지만 찾아다니는 우리 정치의 후진적 모습이다.

비방 흑색선전 지역주의 등 정치의 고질병이 그대로 존재했다는 것은 이 병이 풍토병으로 자리잡은 것이 아닌지 걱정하게 한다. 탈·불법이 난무해 정치 수준의 한계를 말해주었지만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힘이 없다는 무력감을 이번 선거는 또 한번 확인해 주었다.

미디어선거가 돈 선거의 폐해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지만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나라 전체를 적개심과 분노로 넘치게 한 수단이 된 것도 심각한 일이다. 미디어선거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TV토론은 기계적인 공정성에만 지나치게 집착해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결과만 가져왔을 뿐이다. 모두 대선을 대선답지 않게 한 재료들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치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는 그래서 또 한번의 실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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