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02-노무현 후보 표정]"공조파기 영문 잘몰라"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8시 25분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19일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가 19일 부인 권양숙씨와 함께 서울 종로구 혜화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19일 하루종일 초췌한 표정이었다. 빡빡한 유세 일정 속에서도 유지했던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도 많이 잠겼다. 전날 밤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지지 철회 선언 이후 대책을 논의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는 게 보좌진의 전언이다.

노 후보는 이날 오전 5시반 옷만 갈아입은 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뒤 종로구 명륜동 자택으로 돌아가 오전 7시25분경 투표를 했다. 그는 당초 이날 오전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에 있는 선영에 들르기로 했으나 이를 취소했다 다시 일정을 바꿔 오후 1시반 김해로 향했다.

그는 오후 2시반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정 대표의 지지 철회 선언에 대해 가라앉은 목소리로 “여러 방향으로 짐작을 해봤지만 아직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 대표가 공조 단계에서 여러 가지 요구가 있었지만 다 들어주지 못했다. 이는 원칙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 대표의 지지 철회가 (득표에) 부정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반작용도 있지 않겠느냐”며 ‘역풍’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특별한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의 자리까지 가려니까 장벽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진영에 도착한 뒤 현지에 살고 있는 형님 노건평씨(61)와 선영에 참배했다. 그는 참배 전 “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진영읍 봉화 마을에 들러 고향 어른들에게도 인사했다. 주민 이모씨(54)는 “노 후보가 다 되는 줄 알고 돼지 두 마리 잡고 국밥까지 준비해놨는데 막판에 정몽준이가 판을 깨놓은 것 아이가”라며 걱정했지만 노 후보는 별말이 없었다.

그는 이어 노건평씨 자택에 들러 취재진을 물리치고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노건평씨는 정 대표의 지지 철회 선언 이후 “이제 끝난 것 아이가”라며 통음(痛飮)을 했다는 후문이다. 노 후보는 고향주민들이 준비한 돼지고기도 들지 않은 채 상경해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김해〓이승헌기자 ddr@donga.com

▼"낮은 투표율 걱정…결국 이길것" ▼

“언론에서 우리가 자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쓸까봐 얘기 안 하려 했지만… 결국엔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승리할 것이다.”

19일 오전 11시 열린 긴급 선대위 본부단장 회의에서 임채정(林采正) 정책본부장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의 ‘노 후보 지지 철회’가 투표율엔 약간 영향을 줄 것 같지만 지지 후보 선택엔 변화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희선(金希宣) 여성본부장이 곧바로 말을 받아 “아침에 일부러 택시를 4번 탔는데 운전사 1명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지지자고 나머지는 모두 노 후보를 지지했다”며 “한 운전사는 ‘정몽준이 (정신이)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했다”고 가세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와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은 ‘정 대표의 지지 철회는 통합21의 당론이 아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지구당별 양당 공조를 더욱 강화해 ‘투표율 올리기’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민주당 당직자들은 당사 곳곳에 삼삼오오 모여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에 바빴다. 비관론과 낙관론이 미묘하게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일부 당직자들은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의 지지표가 급격히 노 후보에게 쏠리고 있고 기존 지지자의 결속도도 한층 강화됐다”며 1∼3%포인트 차의 신승을 예상했다. 반면 비관론자들은 “투표율이 낮은 것은 정 대표를 보고 노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이 대부분 기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그동안 매일 기자실에 들러 낙관적인 선거 판세를 브리핑하던 이해찬(李海瓚) 본부장은 이날 “초대형 돌발변수가 생겨 도저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날 오후 들어 정 대표의 결정에 반발한 통합21 당직자들의 탈당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민주당에서도 노골적인 불만과 비판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3시경 김경재(金景梓) 홍보본부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정 대표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 그런 결정을 내리고도 정치적으로 살아 남기를 바라는가. 노 후보가 야밤에 집에까지 찾아갔는데 술 먹었다고 만나주지도 않은 건 또 무엇이냐”고 비난했다.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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