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01…몽달 귀신 (3)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7시 35분


사립문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가 들어왔나 보다. 자, 서둘러야겠다. 인혜는 호박을 주걱으로 짓이기고, 찹쌀가루를 솔솔 뿌리고 밤 알갱이를 몇 개씩 떨어뜨리면서 바닥까지 휘휘 저었다. 아 참, 소원이 고모가 돌아오면 유과도 만들어야 된다. 오늘 아침에 약속을 했거든, 만드는 방법 가르쳐주기로.

어렵습니까?

하나도 안 어렵다. 우선은 찹쌀가루를 쪄서 반죽을 하고, 그리고 넓은 판에다 찹쌀가루를 뿌리고 얇게 펴는 거라. 그 다음에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말리고. 기름에다 천천히 튀겨서 물엿 바르고, 밥풀가루를 꼭꼭 묻히면 끝이다.

간단하네예.

간단치. 중요한 거는 방문 딱 닫은 온돌방에서 말리는 거다. 바람 맞으면 좍좍 금이 가니까 말이다.

인혜는 다 끓어 부글거리는 호박죽에 소금을 뿌려 맛을 보았다. 맛있다. 솥을 아궁이에서 내려놓고 물에 담가 두었던 도토리묵을 네모지게 숭덩숭덩 잘라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배추김치를 총총 썰어 참기름과 간장으로 맛을 내어 묵에 곁들였다. 자 그럼 도토리묵도 다 됐고, 호박죽도 다 됐고, 김치는 썰었고, 밥은 뜸만 들면 되고, 꽁치도 이제 다 구워져 가고. 인혜는 걷어올린 소매를 내리고, 젖가슴 바로 밑에 묶어 두었던 치마 끈을 풀어 내렸다.

다들 사내아이, 사내아이 하지만도 엄마는 네가 여자아이라도 실망 안 한다. 여자면 어떻노. 같이 먹을거리도 만들고, 바느질도 하고, 재밌다 아이가. 태아가 힘껏 배를 찼다. 몸부림치듯 두 발과 두 손을 버둥거렸다. 인혜는 너무 아파 신음 소리도 내지 못하고 칼을 쥔 채 기둥에 기댔다. 찼다, 또. 오줌을 지릴 정도의 아픔이다. 눈도 뜰 수가 없다. 눕고 싶다. 하지만, 아직이다. 인혜는 악물었던 이에서 힘을 빼고, 태아의 머리가 있는 부근을 왼손으로 쓰다듬으면서 심호흡을 계속했다. 큐우, 파아, 큐우, 파아, 너, 지금은, 안 돼, 지금, 진통이, 시작되면, 오늘, 저녁밥, 못 먹…, 큐우, 파아, 큐우, 파아…머리 가장자리에서 땀이 송송 솟아 얼굴로 흘러 떨어진다. 눈썹에 걸려 멈추기도 하고, 턱을 타고 흘러내려 목에서 가슴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큐우, 파아, 큐우, 파아, 아아, 멈췄다. 아가가 조용해졌다. 인혜는 벽에다 손을 대고 일어섰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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