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윤상호/뒤통수 맞은 국방부

  • 동아일보
  • 입력 2002년 11월 24일 19시 03분


24일 오후 국방부 기자실. 차영구(車榮九) 국방부 정책실장과 장광일(章光一)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이 다급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차 실장은 “북측이 이날 오전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 도로 연결 공사 구간의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제거 작업의 상호 검증에 대한 우리측의 협상안을 주한 유엔군사령부의 개입을 이유로 거절했다”고 발표했다.
차 실장은 이어 “북측이 답변에서 ‘철도 도로 연결을 희망한다’고 밝힌 만큼 협상 결렬, 전체 공사 무산으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내 국방정책을 총괄하는 두 사람의 표정에는 착잡함과 허탈함이 교차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사태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군 수뇌부가 북측의 의도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 결과라는 비판이 많았는데, 결국 그런 비판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시인하는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달 초 북한은 9월의 남북간 군사보장합의서를 근거로 검증단의 명단을 남측에 이미 통보했다고 버텼고, 유엔사는 정전협정에 따라 유엔사측에 직접 명단을 보내라고 맞섰다. 국방부도 “북측은 명단을 유엔사로 통보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인 19일 오후. 차 실장은 기자회견에서 “한미간 협의를 통해 북한 검증단의 군사분계선(MDL) 월선 통보 절차를 단순화하는 데 합의, 양측의 갈등 요소를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군 수뇌부들은 “유엔사를 설득해 얻은 ‘묘책’이다. 북측도 더 이상 트집잡기 힘들 것”이라며 자찬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북한의 트집은 정전협정의 무력화(無力化), 유엔사 무시,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려는 불순한 기도로 판단된다”며 원칙 고수를 주장하던 국방부였지만 일단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에 비판론도 수그러들었다. 남북한의 항구적 연결통로를 성사시키는 게 군사적 절차시비보다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군이 ‘내줄 건 다 내주고 뺨만 맞고 돌아서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도대체 북측과 미리 얘기나 해보고 ‘묘책’ 운운하며 문제가 해결됐다고 호언장담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윤상호기자 정치부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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