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80…전안례(奠雁禮) 2

  • 입력 2002년 11월 22일 17시 57분


인희는 집게손가락 끝에 연지를 듬뿍 찍어 동생의 두 볼에 원을 그리고 얼룩지지 않게 꼼꼼하게 발랐다.

“태몽은 엄마만 꾸는 거 아니다, 아버지가 꾸는 경우도 많으니까. 우철씨한테 물어 봐라. 곰이면 사내아이고 뱀이나 살무사면 여자아이다”

“알았다”

인혜가 하얀 버선을 신고 오른발에 꽃신을 신자, 인희는 거울에 씌운 천을 걷어냈다.

“봐라, 엄청시리 예쁘다…그래도, 니가 없으면 허전해지겠다 아이가”

“놀러오면 되제”

“그래 자주 갈 수는 있나. 친정 식구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면 싫어한다”

“그럼, 내가 가면 되제”

“그럴 시간이 어딨나. 시월에는 엄마가 될 텐데”

“엄마…아직 실감이 안 난다”

“입덧은 괜찮나?”

“별로 안 괜찮다”

“먹는 흉내만 내라”

“보기만 해도 속이 메슥거리는데”

미닫이문을 열고 신부의 둘째 셋째 언니가 들어왔다.

“신랑이 정방에 들어갔다”

“아이고, 서둘러야겠네”

언니들은 돗자리를 깔고 모란이 그려진 병풍을 세우고, 상에다 초 두 개, 물 석 잔을 준비해놓고 서둘러 안방을 나갔다.

“나도 좀 거들고 와야겠다. 앉아서 좀 쉬어라”

인희가 나가자 인혜는 거울에 다가가 자기 모습을 보았다. 너무도 아름답다. 두근, 두근, 심장이 몇 번이나 두근거리고, 인혜는 자기 모습에 넋을 잃었다. 아름다운 신부 옷을 입어서만은 아니다. 환희가 내게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는 거다. 그 사람과 한 몸이 된다. 같이 살아간다. 그 사람은 이 아이의 아버지가, 나는 이 아이의 엄마가 된다. 아!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인혜는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았다. 이우철, 지인혜, 두 이름이 여기서 하나로 이어진다. 인혜는 아직 이름없는 태아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버지하고 엄마가 전안례를 치르는 날이다. 기러기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평생 헤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정절, 순종, 신의, 애정이 많은 철새제. 오늘 너거 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 나무 기러기를 건네면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거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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