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언론이 이간질…"

  • 입력 2002년 11월 18일 19시 29분


“언론의 이간질에 우리가 잘 합의해 놓은 게 문제되면 안 된다.”

18일 국민통합21측이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세부계획이 언론에 공개된 데 반발해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서자 민주당 이해찬(李海瓚) 선대위 기획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느닷없이 언론에 화살을 돌렸다.

이 본부장의 황당한 발언은 이 날짜 각 조간신문에 ‘샘플수 1800명’ ‘25일 3개 여론조사기관 조사’ 등 상세한 조사 방식이 민주당 관계자들의 코멘트로 보도된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대해 통합21측이 민주당측의 ‘고의 유출 의혹’을 성토하고 나서며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다.

그는 “언론이 단일화를 깨려 한다”며 흥분한 표정으로 “여론조사 방법이 마지막 수단인데, 이걸 보도해 단일화를 깨겠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간첩’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막말까지 했다.

심지어 그는 “양당의 합의사항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언론의 의무 아니냐”는 기자들의 반박에 “국민이 그걸 알아서 뭘 하느냐”고 말했다. 재야출신으로 교육부 장관까지 지낸 그가 언론과 취재원의 관계,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마저 없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또 그의 말을 뒤집으면, 양측이 합의한 공당(公黨)의 대통령후보를 뽑는 절차와 방식은 ‘국민이 알 필요조차 없는’ 비밀사항인 셈이다.

그러나 애당초 양측이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단일화를 하려 했던 진정한 속셈은 후보단일화 그 자체라기보다는 TV토론을 통해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의 발언은 TV토론이라는 공개된 무대에 관객을 끌어들인 뒤 ‘쥐도 새도 모르게’ 여론조사를 실시해 단일후보를 가리겠다는 모순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자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더욱이 여론조사의 세부계획을 언론에 흘린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거나 통합21측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허술한 보안의식을 자성하긴커녕 언론을 ‘한나라당의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아무래도 자가당착이란 느낌이다.

박성원 정치부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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