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한영우/투탕카멘과 정조대왕

  • 입력 2002년 11월 10일 19시 11분


해외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문화와 외국문화를 비교하는 안목도 높아져 가고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한국과 외국의 역사유적지를 직접 가보는 것이 백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하드웨어만 보고 문화의 질을 논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외관이 크고 화려해야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우리 문화를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크기와 화려함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실 우리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문화의 우열을 그런 데서 찾는다면 그런 여행은 외화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피라미드 大役事엔 노예 희생이▼

오래 전 일이지만 태국 방콕 교외의 에메랄드사원을 보고 사원을 뒤덮은 찬란한 금빛에 놀라면서 그 사원을 지은 18세기의 우리나라 영정(英正)시대를 떠올린 일이 있었다. 금은그릇을 궁중에서 추방하고 백자(白磁)를 쓰면서도 철화문(鐵畵紋)이나 진사문(辰砂紋) 같은 화려한 무늬가 들어간 도자기는 사치스럽다고 만들지 못하게 한 18세기 조선왕조에서 황금칠을 한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로마 바티칸의 베드로성당을 비롯해 유럽 각지의 성당 건축을 보았을 때도 그 규모와 화려함에 놀라면서 우리 조상의 정서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다. 약 1만개의 방을 자랑하는 중국 베이징의 쯔진청(紫禁城)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역사를 보면 장려한 궁궐이나 성곽을 건설하려고 시도한 임금이 더러 있었지만, 그때마다 신하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좌절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대왕은 한때 당나라를 막기 위해 경주에 큰 성곽을 쌓으려 했으나 의상대사가 이를 만류해 중지시킨 일이 있다. 정치를 잘 해서 민심을 얻으면 궁궐이나 성곽이 허술해도 나라를 지킬 수 있고, 정치를 잘못하면 만리장성을 쌓아도 소용없다는 것이 반대의 이유였다. 거창한 방어 건축물보다 ‘민심(民心)의 성(城)’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방학에 이집트, 그리스, 터키를 둘러보고 우리 문화의 특성을 또 한번 반추하는 기회를 가졌다. 중국 동북지방 지안(集安)시에 있는 장군총이 크다고 자랑하지만, 카이로에 있는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높이가 열 배 이상 더 크다. 카이로 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소년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발굴된 유품은 모두가 휘황찬란한 황금으로 치장되어 있다. 그러니 정작 파라오의 사치는 어떠했을지를 짐작할 만하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더욱 불가사의한 것은 현재 이집트의 국민소득이 1000달러 정도라는 것이다. 이집트뿐 아니라 위대한 고대문명을 건설한 거의 모든 나라가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라오는 죽음을 믿지 않았다. 그러기에 천년 만년의 내세를 꿈꾸면서 미라가 되었던 것이다. 그 꿈이 결국 5000년이 지나 이른바 선진국의 여러 박물관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의 감탄어린 시선을 받으며 잠자고 있는 것인가.

카이로의 피라미드에서, 룩소르의 람세스 무덤과 카르낙 신전 등에서 나는 절대 왕권과 종교의 결합이 가져온 위대한 건축문명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살인적 무더위 속에 집채만한 돌덩이와 사투를 벌였을 역부(役夫) 노예들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은 華城에 큰 백성사랑 담겨▼

피라미드를 보면서 우리의 정조 임금이 떠올랐다. 임금은 수원 화성(華城)을 건설하면서 “나는 화성이 빨리 건설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백성들이 즐겁게 참여하느냐가 관심사”라고 말하면서 반나절까지 계산해 장인(匠人)들에게 품삯을 주고 그들의 이름을 모두 ‘화성성역의궤’에 기록했다.

그래서 화성은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화성의 가치는 그 하드웨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 곧 ‘민심의 성’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역시 한국문화의 특징은 인간을 사랑하는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영우 서울대 교수·한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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