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경찰청은 범죄유형별 발생 시차를 보여주는 ‘범죄시계’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9시간 30분마다 살인사건이 한 건, 1시간30분마다 강도사건이 한 건씩 발생했다. 강간사건은 1시간30분으로 지난해 1시간18분보다 다소 호전됐으나 방화사건은 6시간12분으로 1999년 8시간에서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 범죄시계는 미 연방수사국(FBI)이 내는 연례보고서를 본떠 만든 것인데, 인구 10만명당 전체 범죄발생률로 보면 우리나라는 서구에 비해 아직은 ‘안전한 사회’라는 게 전문가들의 총평이다.
▷범죄는 사회에 따라 유형과 특징을 달리 한다. 예를 들어 살인·강도·강간·자동차절도·중(重)폭행·주거침입·절도 등 미 FBI가 규정하고 있는 7대 범죄유형 중 자동차절도나 주거침입은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항목들이다. 우리의 경우 예의 주시해야 할 부분은 최근 들어 폭행·상해·강도·성범죄 등 폭력범죄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지고 있다는 사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최인섭 박사는 “외환위기 때에 폭증했던 경제범죄의 증가율은 안정세로 돌아선 데 비해 폭력범죄는 마치 외환위기를 계기로 탄력을 받은 것처럼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우려한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는 속설은 우리 사회에선 아직 진실에 가깝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 같은 폭력범죄의 폭발적 증가추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매우 미흡하다는 점이다. 넓게 보면 날마다 폭력물을 쏟아내는 텔레비전 방송과 ‘빨리빨리’를 강조하는 조급증 문화도 폭력범죄 증가의 원인이 되겠지만, 이런 추세에 주도적으로 대응해야 할 책임은 아무래도 공권력 쪽에 있다. 국민이 세금을 꼬박꼬박 내가면서 국가에 거는 최소한의 기대가 바로 ‘안전한 사회’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다가올 대선에서 선택될 새 정부는 범죄시계를 뒤로 늦추는 일에 좀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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