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市長이 무서워…

  • 입력 2002년 9월 30일 18시 02분


본보를 비롯한 30일자 각 신문에는 ‘아파트 40년 돼야 재건축 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국정감사 자료 기사가 비중있게 보도됐다.

이 기사는 재건축을 기다리는 수십만 가구의 아파트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민감한 내용이기도 했다. 따라서 서울시로서는 보도가 달갑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29일 밤 가판신문이 나온 이후 서울시의 관계 공무원들이 보인 행태는 서울시 행정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듯해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시는 ‘보도내용은 서울시의 확정된 입장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보낸 것도 모자라 간부들을 각 언론사로 급파했다.

이들의 해명요지는 요컨대 “보도된 내용은 전임 시장 때 마련된 안이지, 이명박(李明博) 현 시장 체제하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이들은 급기야 “시장에게 보고되지 않은 내용이 너무 크게 보도되면 해당 간부들이 개인적으로 매우 곤란해진다”고 매달렸다.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제출한 국감자료를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항의에도 막무가내였다.

사전 보고되지 않은 사안이 보도돼 행여 불호령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자율성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1000만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의 당당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을 이 같은 무소신형 공무원으로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들만 나무랄 일도 아닌 듯 했다.

서울시는 8월 이 시장의 승인을 받지 않은 교통정책을 사전 협의 없이 발표한 교통관리실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모조리 물갈이한 바 있다. 최근에는 기자들의 취재내용을 즉각 보고하라는 내부 지침도 내렸다.

현재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모습들은 21세기형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서울시의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제3공화국 시절의 공무원 사회에서나 군사문화에 젖어있던 과거의 기업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모습들이 아닐까. 구성원들이 자율적이지 않으면 그 조직도 창조적일 수 없다.

정경준기자 사회2부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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