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김영진/美 ˝북-일 수교 탄탄대로 아니다˝

  • 입력 2002년 9월 24일 18시 19분


고이즈미-김정일 깜짝쇼로 나타난 고이즈미 ‘쇼크’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도 프라이드가 강하고 경직된 북한 지도부가 다른 나라도 아닌 일본에 수교 교섭 최종단계라면 몰라도 이 시점에서 납치사실 인정이라는 굴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언동을 결단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들의 국가 체제와 통치집단 존망에 대한 위기감과 북-일 관계 개선에 대한 절실한 갈망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회담성과-내용 긍정평가 안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17일 오전 정상회담 직전 ‘피랍 일본인 8명 사망’이라는 충격적 소식을 보고 받았다. 사망 경위에 대한 의혹을 자아낸 사망일자가 담긴 명단은 오후의 정상회담이 다 끝난 후에야 다나카 히토시 일본 외무성 대양주국장이 보여주었다고 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잠시 후 예정대로 미리 준비된 북-일 평양선언에 서명했다. 납치에 대한 북측의 사과문구를 삽입하자는 수정 제안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기야 일단 평양에 간 이상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일본의 지원을 통해 파탄된 경제를 재건하는 한편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의 대북 노선에 대한 타격과 견제를 노렸으며, 이를 위한 북-일 수교회담을 일단 궤도에 올려놓는데 성공했다. 북한 외무성이 이데올로기와 노동당의 속박에서 벗어나 김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에 따라 준비한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납치 일본인 8명 사망’이라는 보도가 일으킨 거센 여론에 밀려 고이즈미 정부는 앞으로 사망진상 규명을 가장 중요한 의제로 다룰 것을 국민에게 다짐해야만 했다. 결국 납치문제의 완전 해결을 요구하는 여론은 그들이 국교 정상화 시나리오를 실천하는데 견제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납치문제가 일본측이 납득할 수 있게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수교 전 양국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많이 남아 있다. 평양선언에는 쌍방의 핵문제와 관련된 모든 국제적 합의를 준수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핵확산방지조약이나 북-미기본합의서 등에 대한 원칙적 총론적 의사 표시 이상의 것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종류의 사찰을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근 고이즈미 총리 자신의 발언이 확대 해석되거나 혼란을 낳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 응하는 등 북한의 구체적 활동이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다. 미사일 발사동결 의향 표명은 진일보한 것이나 그것의 의의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린다.

일본이 대북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전후 문제 처리의 필요성, 한반도와 관련된 일본의 이익 수호, 탈(脫) 미국 아시아 외교, 독자외교 지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을 보는 미국의 시각은 냉철하다. 공식 논평은 고이즈미 총리의 대화노력을 환영 지지한다는 것이 전부다. 회담성과나 내용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핵미사일 같은 핵심문제에 진전이 있었다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의 선언적 입장 표명에 회의적이다. 행동을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핵 미사일 해결돼야 수교˝▼

선언내용이나 일본 정부의 설명에도 문제가 있지만 이 시점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자체는 미국의 대북 정책 추진의 효율성을 저하시켰다는 견해도 있다. 방북이 미국 정부 내의 소위 대화추진파에게는 고무적인 것이겠지만 앞으로 일본의 국교정상화 교섭의 속도와 내용, 특히 경제지원 문제는 미국의 국익에 배치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핵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외교관계 수립으로 돌진하지는 않을 것으로 미 정부는 보고 있다. 미국은 일본이 미국과 공조하면서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연계해 경제력을 사용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우방국가 미국의 최우선순위 정책인 대량살상무기 개발 확산 저지 정책을 방해하는 행동을 취할 리는 없다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다.

김영진 미국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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