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주위 모든 것이 짐처럼 느껴진다면…´카르마´

  • 입력 2002년 9월 13일 17시 46분


◇카르마/박영한 지음/176쪽 7800원 이룸

낯선 사람에게서 내 속에 묻어 둔 어떤 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순간 아득하고 묘한 기분에 휩싸여본 적이 있는지. 방심한 채 무심히 놓아둔 마음이 날카롭게 저며오거나 흐린 미소로 입가를 스쳐 지나가거나.

소설가인 ‘나’는 친구와 떠난 여행길에서 우연찮게 강원도 심심산골, 그것도 외양간 곁방에 주저 않게 된다.

수년간 공들인 작업은 실패로 끝나고 ‘윤회의 길목’에 서 있는, 고개 숙인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이제 움켜쥐고 있던 것을 다 놓았다. 비어버린, 또 무엇으로도 채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세상은 허무함으로 가득 찼을 뿐이다.

강원도 오지마을에 혼자 떨궈진 ‘나’는 어머니를, 이복형을, 친형을 가슴 속에서 꺼낸다. 사실 ‘나’에게 가족은 꿈에서 마저 지워버리고 싶은 존재였다.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로 기우뚱거리며 나오는 집주인 남자에게서 관절염으로 기동이 불편해 팔꿈치로 방바닥을 기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 시절 어머니란 한시바삐 어디다 내다 버리고 싶은 귀찮은 짐 보퉁이 같은 존재였다. 가족들의 삶을 구렁텅이로 몰고 간 어머니의 반평생이란 회상하기에도 끔찍한 그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 산골마을에서 우연찮게도 어머니의 모습과 마주치게 되다니’.

뒷방에서 사는, 외양간을 지키는 집주인의 형인 정신박약자 사내. ‘아홉 개의 구멍에서 오물을 줄줄 흘리는 존재’와 다름없는 그 사내는 원시 수렵인 같은 풍모를 지녔다. 사내의 눈매에서 ‘나’는 요절한 둘째 형, 묘한 광기로 눈이 반들거렸던 그 형을 본다.

‘나’와 그 사내가 함께 꿩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 아리랑을 부르며 신명나게 춤을 추는 사내에게서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의 한 장면을, 또 불현듯 다 팽개치고 떠난 이복 형을 본다.

‘이 집에는 내 어머니와 죽은 형제들의 환생태(還生態)가 살고 있다.’

자식들에게조차 외면당했던 거동이 불편한, 고독한 어머니와 역시 고독함으로 자신을 술로 해치고 있는 집주인 남자는 오버랩되며 ‘나’를 끊임없이 죄의식의 구덩이로 몰아간다. ‘나’에게 어머니와 형제들은 등짐처럼 진 ‘카르마(업·業)’였던 것이다. ‘모든 것들이 결국은 윤회 생사의 긴 과정에 끼여든 한 토막 삽화였으며, 그 삽화의 연장이 나를 비롯한 중생들의 현재 모습임을 이 나이 되어서야 깨닫게 되다니…’.

‘나’는 쫓긴다. 도피할 수도,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다. 환상 속으로 건너뛸 수 밖에.

10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작가 박영한(55). 그 또한 어느 겨울 한철을 강원도의 한 오지마을에서 보냈다고 했다. 장편 ‘장강(長江)’ 이후 6년만에 책을 펴낸 그는 “글을 다 쓰고 서야 소설 속에 옹박힌 비정상적인 이들이 바로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비천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깊어진다. 휴머니즘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불교적 생물학적 인류문화적 사유에 마음이 모아진다. 아주 먼 시간 속으로 회귀해 간다”고 말했다.

“작업실 앞에 화단을 만들어 남다른 손길로 ‘생명’을 돌본다”는 작가의 속내가 ‘작가의 말’에 고스란히 담겼다. 초록잎에 건네는 그의 ‘사랑’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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