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정수근 “지긋지긋한 슬럼프야”

  • 입력 2002년 9월 10일 17시 39분


두산 정수근(25·사진)은 요즘 불면증에 걸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해도 밤새 뒤척뒤척. 어느새 새벽 4, 5시가 되어 버리고 자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충혈된 눈을 하고 운동장에 또 나간다.

말수도 부쩍 줄었다. 그는 야구계의 대표적인 ‘개그맨’. 항상 생글거리는 얼굴에 속사포같은 말재주로 남들을 웃겼다. 하지만 요즘엔 동료들이 “쟤가 정수근 맞아?”라고 할 정도로 침울해 졌다.

이 모든 게 다 야구를 잘 못해서 생긴 ‘홧병’ 때문이다. 정수근은 “밤에 누으면 ‘어쩌다 내가 이렇게 됐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문득 화가 치밀어 오른다”며 토로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가장 뛰어난 톱타자였다. 뛰어난 타격센스에 빠른 발, 폭넓은 외야수비에 재치있는 타격 등 흠잡을 데가 없었다. 지난해 성적 타율 0.306, 52도루에 개인통산 성적도 0.282에 318도루.

하지만 올해는 초반부터 슬럼프에 빠졌다. 4월 한달간 타율이 0.261. 그는 “초반에 방망이가 잘 안 맞으면서 조급해 했다. 자신감도 떨어졌고…. 심리적인 요인이 컸던 것 같다”고 나름대로 부진의 이유를 분석했다.

전반기를 타율 0.251로 마감한 정수근은 후반기에 단 한번도 이 타율 이상을 기록한 적이 없다. 공격의 첨병인 그가 부진에 빠지자 팀도 야금야금 승수를 까먹기 시작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챔피언인 두산은 전반기 2위에서 후반기 5위까지 떨어져 이젠 포스트시즌 진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

9일 현재 정수근의 성적은 타율 0.237(393타수 93안타)에 3홈런 19타점. 신인이던 95년 타율 0.214 무홈런 10타점 이후 최악의 성적이다. 정수근은 “신인때는 그래도 야구가 느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실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타석에 서면 공이 안보일 정도”라며 한숨을 내쉰다.

정수근은 요즘 타순이 들쭉날쭉하다. 9번에 배치될 때도 있고 아예 선발출전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다. 그가 미덥지 못하다는 뜻이다.

데뷔 이후 최악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정수근이 슬럼프에서 탈출할 때가 바로 두산이 포스트시즌 티켓과 가까워지는 시기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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