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정훈/정치인들의 부메랑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36분


90년 12월.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이 노재봉(盧在鳳) 비서실장을 국무총리로 지명하자 평민당 총재이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총리서리는 위헌’이라고 반발했다.

노 실장이 총리서리로 임명된 직후 인사차 방문하려 하자 DJ는 기자회견까지 갖고 “국회 인준 전에는 만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총리와 장관을 동시에 임명하는 개각을 했는데, 만약 노 총리서리가 장관 제청권을 행사했다면 위헌”이라고 못박았다.

요즘 한나라당은 12년 전 DJ의 기자회견 내용이 실린 신문기사를 제시하며 “그랬던 김 대통령이 왜 지금은 총리서리를 고집하느냐”고 ‘DJ의 오기’를 맹공하고 있다. 청와대고 민주당이고 말문이 막히는 모습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또 다른 ‘부메랑’현상이 한나라당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97년 대선 때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가 아들 병역문제로 지지도가 급락하자 당시 반(反)이회창 진영의 선두에 섰던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지금 당이 어려운 것은 이 후보 아들의 병역문제에 대한 비판적 여론 때문이다”며 ‘후보교체론’까지 거론했다.

서 대표는 “그때 주장은 뭐고, 지금 입장은 뭐냐”는 민주당측의 공세에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나중에 알아보니 전혀 문제가 없더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실제 한나라당도 이 대목에선 반박에 궁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고작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병역문제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고 말꼬리를 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둘 다 ‘무한(無限) 정쟁’ 속에서 정적(政敵)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일단 공격거리가 되면 무엇이든 들고 나서고 보는 우리 정치의 소극(笑劇)들이다. 양당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과거와 지금의 행태의 괴리에 대한 지적에 “뼈아프다”는 말이 터져나오는 상황을 정치지도자들이 유념해주었으면 좋겠다.

김정훈기자 정치부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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