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4…삼칠일 (3)

  • 입력 2002년 8월 21일 18시 44분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여자는 치맛자락을 끌어올려 양끝을 묶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달빛을 가로막고, 어둠에 그림자를 드리우며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드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걷고 있는데, 불현듯 목졸린 여자의 목에서 터져나오는 듯한 소리가 들리면서 무언가가 머리 위에서 푸드득 날아올랐다. 부엉이다. 여자는 가슴에 손을 얹고 심호흡을 하고, 피부에 딱 달라붙은 공포를 벗겨내려 하지만, 목덜미에서 옷깃 안으로 들어간 머리카락에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털어낸다. 괜찮아 괜찮다니까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정든 님이 오셨는데 인사를 못해

나무 뿌리에 걸려 넘어져 아리랑 노래 소리가 끊겼다. 여자는 등을 펴고 보폭을 좁히고, 위로 위로 이어지는 길을 쳐다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산으로 들어온 지 오래지도 않은데 벌써부터 다리와 폐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장딴지와 허벅지 뒤가 아프다. 턱을 위로 치켜들고 나무 가지와 잎 사이로 초승달과 별을 찾을 수도 없고,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걷고 있는 다리, 발치에서 졸음이 피어오른다. 저녁 때, 그 사람의 품에서 얕은 잠을 잔 후 한 잠도 자지 않았다. 그 전날 밤도 자지 못했다. 잠시 쉴까. 하지만 지금 멈춰서면 나무등걸에 기대에 잠들고 만다. 미령! 당신 목소리! 여자는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다. 없다, 있을 리가 없지, 이런 산 속에. 여자는 오른 손등으로 눈을 비벼 보았지만, 너무도 고통스러운 나머지 눈에 비치는 것은 두 발 밖에 없었다. 짚신이 닳아 피가 스며나온 오른발과 왼발.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용하, 용하, 용하, 용하, 나는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바램을 이루고 싶은 것인지 그 바램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제 나는, 간다, 는 당신에 말에 등을 돌렸다. 당신은 내 몸에 두 팔을 두르고, 허벅지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왜 같이 있고 싶지 않겠나 미령, 헤어지고 싶지 않지 미령. 당신의 목소리다, 귓전에, 도처에. 미령, 정말 이쁘다 여기도 여기도 여기도 전부 내 꺼다. 여자는 진창에 발이 빠져 있는 것을 알고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커다란 바위와 바위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조그만 샘이 있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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