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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8월 13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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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대 초 미국에서 흐루시초프의 회고록(‘흐루시초프는 기억한다’)이 출간됐을 때 진위 논란이 일었다. 출판사측은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제1서기에서 실각한 뒤 5년간에 걸쳐 은밀히 녹음해 놓은 얘기를 바탕으로 회고록을 출간한 것이라고 밝혔으나 일각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소련이라는 나라에서 흐루시초프 같은 사람의 육성 녹음이나 테이프 유출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미 중앙정보국(CIA) 조작설까지 나돌았다. 이 녹음테이프와 흐루시초프의 유엔총회연설 녹음테이프의 음성 성문이 같다는 분석 결과가 나온 뒤에야 논란은 종식됐다.
▷꼭 전문가가 아니라도 목소리만 듣고 쉽게 사람을 식별할 수 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목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말투와 말씨, 어휘와 표현까지 살피면 말하는 사람의 출신지 나이 성격 학력 직업도 짐작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몇 년 전엔 전화를 걸면 즉석에서 목소리를 분석해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 정도를 체크해주는 업체가 생겨나기도 했다. 2차세계대전을 전후해 음향분석기가 개발되면서 성문 분석이 실용화되기 시작했다. 2차대전 당시 미군은 정보전에도 성문 분석을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문 분석 결과가 틀릴 확률은 10만분의 1 정도라고 한다.
▷성문 분석이 가장 실용화된 분야는 역시 범죄 수사다. 그러나 성문 분석 결과가 곧 증거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87년 원혜준양 유괴사건 수사 때 성문 분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경찰은 당시 협박전화 녹음테이프의 음성과 비슷한 50여명에 대한 성문 분석을 실시해 성문이 동일하게 나온 범인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는 데 성공했다. 김대업(金大業)씨가 검찰에 제출한 녹음테이프의 진위도 성문 분석을 하면 곧 드러날 것이다. 그와 함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요즘은 거짓말 여부조차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판정하는 세상이다.
임채청 논설위원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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