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스님의 山寺이야기]<4>보름마다 있는 삭발날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16분


삭발날에 한 스님이 다른 스님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사진제공=현진스님]
삭발날에 한 스님이 다른 스님의 머리를 깎아주고 있다
[사진제공=현진스님]
반들반들하게 삭발을 깔끔하게 한 날은 다시 출가한 기분이다.

다른 때보다 수행자로서 용모도 더 훤칠해 보인다. 손으로 만질 때마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맨머리 느낌이 참 좋다. 수행자가 아무리 옷을 잘 입는다고 해도 삭발한 뒤보다 깔끔할까. 삭발한 스님들의 모습이 마치 달덩이처럼 밝아 보인다.

해인사 스님들에게는 보름마다 한번씩 삭발날이 돌아온다. 그러니까 2주간 길렀던 까칠까칠한 머리카락을 다시 자르는 셈이다. 산적처럼 수염이 길게 자랐던 선방의 원주(院主·살림을 도맡아 하는 소임) 스님은 삭발하고 수염을 자르면 잘생긴 귀공자가 된다. 그리고 하얀 머리가 듬성듬성한 교무(敎務)스님도 십 년이나 젊어진 청년 같다.

삭발하는 날 이른 아침부터 수각(水閣) 주위는 삭발의식을 치르기 위해 부산하다. 대야에 물을 담고 비눗물로 머리를 적시는 스님이 여럿이다. 품앗이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머리를 서로 깎아주면 더 빠르게 삭발을 마칠 수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삭발은 머리를 맡기고 있는 것보다 삭도(削刀)를 들고 있는 쪽이 더 긴장된다. 무엇보다 칼을 다루는 일이라서 더 신중해야 한다. 너무 서둘거나 기교를 부리면 머리에 꼭 상처를 내고 만다.

그 옛날 어느 노스님이 두 제자에게 삭발을 하도록 했다. 한 제자는 이발사처럼 빨리 깎았고 또 다른 제자는 서툰 솜씨로 오래 걸려 깎았다고 한다. 삭발이 끝난 뒤 먼저 깎은 제자는 혼쭐났다. 반면 늦게 깎은 제자는 칭찬을 받았다. 혼쭐난 제자는 머리를 재주로 깎았기 때문에 매를 맞았고, 칭찬을 들은 제자는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깎았기 때문에 상(賞)이 주어진 것이다.

이처럼 삭발하는 일은 재주보다는 정성이 우선이다. 재주는 어느 때나 실수를 하기 때문에 생명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능력을 과신하고 권력을 남용하여 자신을 상하게 하고 남을 그르치게 하는 일이 우리 주변엔 아직 많다. 칼자루를 쥔 자의 역할과 소임은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자세와 정신은 삭발하는 일보다는 일상의 모든 일에 골고루 적용될 가르침이다.

입적하신 자운(慈雲) 노스님은 3일에 한번씩 삭발을 손수하시며 수행 일상을 점검하신 것으로 유명하다. 삭발하는 일은 단순히 자라난 모발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시험보듯 공부의 정도를 스스로에게 묻는 행위이다. 나태와 방일(放逸·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노는 것)의 흔적이 머리카락에 묻어날 때면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삭발은 자기 수행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절 집에선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 부른다. 머리카락은 잡초의 뿌리처럼 강한 집착을 나타내는 어리석음에 비유된다. 그러므로 삭발은 거친 풀을 잘라내듯 일상의 갈등과 집착을 단절하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비록 무스를 바르고 염색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멋을 내기 위해 머리맵시를 손질하는 것은 매사에 대한 집착을 더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삭발할 때마다 거듭 깨닫는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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