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방정환, 그는 시사평론가 문화운동가였다

  • 입력 2002년 7월 26일 18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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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소파 방정환
◇없는 이의 행복 / 방정환 지음 민윤식 엮음 / 336쪽 9000원 오늘의 책

23일은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1899.11.9∼1931.7.23) 선생이 돌아가신지 72주기였다. 한국 아동 문학의 대표적인 인물로 어린이 문화운동 단체인 ‘색동회’를 만들면서 일제 강점기 교육계몽 운동을 벌인 그였지만, ‘인간’ 방정환의 면모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은 소파의 새로운 면모를 알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그가 생전에 뛰어난 편집자, 기발한 출판기획자, 예리한 시사평론가인 동시에 천재적인 문화 운동가였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난다. 글을 통해 본 그는 가난했지만 당당했고 늘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당대 최고 문장가들이 한문투를 쓴데 반해 그의 글은 요즘 작가들 문장처럼 현대적이고 낯설지 않다. 1920년대에 쓴 글인데도 주제나 관심사가 현대적이어서 70여년 전에 쓴 글이라는 게 믿어 지지 않을 정도다.

교육개혁 문제를 다룬 글을 보자.

소파 (小波) 방정환 선생 72주기를 맞아 발간된 그의 에세이집은 '어린이 문화 운동가'에 한정돼 있던 그의 기억을 예리한 시사평론가, 천재적인 문화 운동가로 격상시킨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교육이란 무엇이냐? 쉽게 말해 그 시대를 사는데 필요한 지식을 갖춰 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교육은 어떤가. 근검 저축을 배우고 마음착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배우지만 졸업 후 실사회에서 보면 정직한 사람이 편안히 못사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된다. 싸지 아니한 월사금을 바치고 가난한 부모를 울려 가면서 학비를 써가면서 배웠건마는 특별한 기술이나 사상은 그만두고 그날 그날 신문을 펴들면 아는 글자보다 모르는 글자가 더 많다. 참말로 실제로 생활에는 아무 관계없는 글만 골라 배우고 있었다고 해도 그다지 과한 말이 아니다.’

그는 아예 학교교육을 포기하고 집에서 신문이나 잡지 견학을 통한 실천 교육을 시켰으면 하고 조언한다. 대안교육을 고민한 선각자인 셈이다.

어린이 전문가답게 그의 글 곳곳에는 어린이 교육에 대한 글도 많다.

우는 아이에게 무조건 젖만 물리면 능사인 줄 아는 어머니를 보면서 ‘그 응아 소리를 알아 듣고 자리를 조금 넓게 잡아서 몸을 펴게 해주고 좌우로 조금씩 흔들어주면 시원해서 방긋방긋 웃을 것 아닌가. 말 모르는 아기 울음의 절반은 울음이 아니고 말(言語)이다. 어머니는 그 말이 무슨 말인 줄을 알아내기에 마음을 써야 한다.’

‘어린이는 사람의 한 몫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 어머니 아버지라는 한 부부의 몸을 거쳐 나왔지 결코 부모의 마음대로 이러고 저러고 할 소유물이 아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벌어다 주는 것으로 입고 어머니가 먹여 주어야 받아 먹고 있지만 그 어린이가 자라서 천냥어치 인물이 될는 지 만냥어치 인물이 될는 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시대는 나날이 변해가는 것이니 작년보다도 금년이 딴 세상이요 금년보다는 명년이 또 딴세상이 되는 판이라, 30에 아기를 낳았으면 그이는 벌써 아기보다 30년 묵은 낡은 사람이요 아기는 어른보다 30년앞 세상을 살 사람이다. 30년 묵은 옛날 사람이 어떻게 30년 새 세상사람보고 이래라 저래라 내말만 들어라 할 자격이 있는가.’

그는 식민치하 지식인으로서 당시 한국 사회가 지닌 전 근대적 모순과 편협함에 맞섰다. 가부장적 구습들에 의해 억압되어 온 여성의 지위향상에도 관심이 많았다.

‘여성 자신도 스스로 일거리를 지어 가지기에 노력해야 한다. 그러한 아내를 가진 이는 그의 일거리를 장만해 주시기에 힘써야 한다. 바깥에 내세우기 싫으면 텅텅 빈 사랑방에서 이웃 부녀들 소규모 강습을 시켜도 좋겠다.’

‘조선 여인들은 한평생 빨래만 하다 죽는다’며 흰 옷 아닌 염색 옷을 입자거나 ‘한 집안에 시부모 시동서 삼촌 부부등 여러 부부가 살게되면 어른들 충돌에 애매한 어린이가 매를 맞는다’며 핵가족 사회를 주창하던 모습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을 것이다.

그가 말한 ‘없는 이의 행복’은 바로 이것이었다.

‘네가 부잣집 자식이니 돈이 있느냐? 양반 집 자식이니 세력이 있느냐? 태평한 사회에 낳아 졌으니 정해진 업이 있느냐? 무엇에 마음이 끌려서 용기를 못 낼 것이냐?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힘은 여기서 나는 것이니, 아무런 용기를 내기에도 꺼릴 것이 없고 얼마만한 용기를 내도 아까울 것이 없으며 내서 밑질 것이 없지 않으랴. 없는 이의 행복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한없는 용기밖에 내놓을 것이 없는 데에 있는 것이다. 부자가 돈 쓰듯 용기를 내기에 거침없는 데 있는 것이다.’

총 54편의 글이 수록돼 있는데 이중 26편이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수필이다. 선각자들의 고민은 시대를 뛰어 넘는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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