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병일/협상의 기본조차 모르니

  • 입력 2002년 7월 22일 18시 34분


현재 한국이 통상협상을 대하는 자세나 방식은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우루과이라운드 ‘쌀 문제’ 협상 때에서 그리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수출지향, 공업화 위주의 경제성장으로 산업의 비교우위가 제조업으로 넘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우위에 따른 수준과 강도에 맞는 농업분야 구조조정 노력은 하지 않고 농산물 개방 불가라는 경직된 협상목표를 설정했다. 경제활동인구의 절대 다수가 소수 농업 종사자들의 비효율성과 국제경쟁력 열세의 대가를 상당부분 보조하는 보호주의 정책의 경제적 비효율성과 정치적 형평성 부재를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시정하기는커녕, 정치 논리에 압도되어 마지막까지 문제를 전향적으로 인식·해결하지 못하는 조정능력의 부재를 보였다.

▼우리측 주장만 일방적 전달▼

협상기간 중 농업 협상을 전담하는 실무공무원은 1, 2년 주기로 교체되었으며, 막바지에는 불과 몇 개월을 앞두고 교체되어 협상 업무 지속성과 효율성, 그리고 전문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이러한 빈번한 농산물 협상가들의 교체는 실제로 농산물 시장이 개방될 경우 감당해야 할 농민단체 등의 비난을 희석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당시 조정 역할을 했던 경제기획원은 시장 원리에 충실한 개방주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조정 권한이 부족했다. 소비자보다는 생산자의 이해를 앞세우는 관계 부처의 입장이 강경할수록 의견 조정은 어려웠고, 조정을 위해 필요한 경우 취해야 할 과반수 의결은 유명무실했으며 관계 부처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과도기적 정치 체제의 불안정성, 분열적 정당구조, 협상의 주요 고비마다 찾아오는 선거는 경제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시켰다.

현재는 어떠한가. 수익구조는 여전히 불균형적이고 분열적 정당구조, 협상과 맞물린 선거 주기는 당시와 유사하다. 또 이념체계는 여전히 보호무역주의적이며, 통상당국의 조정기능은 그때보다 오히려 후퇴했다. 통치세력의 기반과 유권자들의 표와 연결된 농업문제는 더욱더 정치 이슈화되어 경제적인 해법을 거부하고 있다.

더욱 효과적인 통상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협상 의제들을 효과적으로 조정하는 체계 구축, 경직적인 목표 설정을 대내외에 공표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일, 국내 합의과정의 정당성 확보 등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문제는 우리의 협상문화가, 경제적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정치 쟁점화하는 것을 차단하는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는 데 있다. 개방으로 피해를 보는 집단이야 그들의 업종이 국익에 직결된 것임을 주장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것은 당연하고, 당장 눈앞에 표가 급한 정치인들이 논리에 닿지도 않는 인기 영합적 발언과 태도로 일관하는 것 또한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문제는 정부 당국이 각종 통상 현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들 보호주의 세력을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고 있어서 통상협상의 본질을 왜곡 과장 축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중 마늘 긴급 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연장 불가와 관련하여 정부 부처간에 벌어지고 있는 눈꼴사나운 책임 전가 작태는 정권 말기의 누수 현상이 아니라 소비자보다는 생산자, 그리고 개방이 가져올 전향적인 개혁 과제보다는 단기적인 조정의 고통에만 모든 이들의 신경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한국 통상정책의 가장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다.

우리의 막무가내식 협상방식은 근본적으로 협상은 상대방이 있다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협상장소가 상대방의 목표와 이해, 그리고 그들의 대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데 이용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장으로 전락되곤 한다.이런 막무가내식 협상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이면적으로는 대안을 개발하지 못하는 경직된 조직문화와도 맞물려 있다. 정부가 되었건, 기업이 되었건 우리의 의사결정 방식은 대부분 상의하달식이다. 지연과 학연, 고시 기수 등을 따지는 풍토 속에서 창조적 대안을 발굴하기 위한 격론이 설 자리는 없다. 대안을 개발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상대방의 요구에 응한다는, 전략적 열세임을 인정한다는 주장은 협상의 기본조차 모르는 고집에 불과하다.

▼´타협의 기술´배울 때▼

통상협상은 서로 다른 가치기준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쌍방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통상협상의 본질을 우리 국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한, 또 언론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개방의 피해만을 부각시키고 ‘한국 정부가 또 내어주었다’ ‘압력에 밀려 양보했다’는 식의 보도를 하는 한, 또 일반 대중이 이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지 못하는 한, 통상조직을 어떻게 바꾼다 하더라도 문제 해결은 어려울 것이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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