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DJ 반격 시작인가

  • 입력 2002년 7월 17일 18시 35분


청와대 사람들은 틈만 나면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적 중립이라고 말해왔다. 대통령은 오직 경제살리기 등 국정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로 민주당 탈당을 든다. 그러나 믿을 수 없다. 김 대통령은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바로 ‘아태평화재단의 전면개편과 새출발’을 언급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청와대가 말하는 ‘정치중립’을 못 믿는 첫번째 이유다.

▼민심 맞서는 ´정치집념´▼

대통령 둘째아들 홍업씨가 대기업 등으로부터 47억원을 받고 구속된 것이 도대체 어떤 사건인가. 아들의 단순한 분별없는 이권개입인가. 아니다. 홍업씨는 아태재단 부이사장이었고 사실상 아태재단을 대표했다. 아태재단은 또 무엇인가. 김 대통령이 퇴임 후 동북아시아 외교 안보문제를 연구한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이라지만 실제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장악하기 위한 거점 아닌가. 상왕정치라고 비판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설립 발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모금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 일에 둘째아들이 나섰던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홍업씨가 돈을 받았다고 하나 좋든 싫든 많은 돈을 내놓는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몰라주는 ‘헌금’이라면 결코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아태재단에 돈을 건넨 기업이 한둘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이젠 비밀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홍업씨 비리는 바로 아태재단 비리요, 정치적 사건이다.

김 대통령은 그런 아태재단의 ‘새출발’을 공언했다. 아태재단의 사회환원을 요구하는 여론을 분명히 정면 거부하는 특유의 끈끈함을 보여준 것이다. 이래도 김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를 부인할 수 있겠는가. 또한 아들의 구속을 전후해서 검찰권과 빚어진 갈등에서도, 장상 총리서리 임명과 함께 이루어진 개각에서도 ‘뭐라 해도 나대로 가겠다’는 정치적 욕구가 드러난다. 지금 집권세력 전면에 포진한 면면을 보라. 이렇게 정치색이 강한 진용은 일찍이 없었다. ‘정치 중립’과 관련해 더욱 주목할 것은 김 대통령 스스로는 그런 말을 딱 부러지게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 무언(無言)의 함의(含意)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지금 김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가. 정치인생의 정점에 이르렀으나 신변안전이 불투명한 최대의 정치적 위기도 함께 맞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상황에서 밀리기만 할 대통령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지난 역정이 잘 말해 준다. 막판 뒤집기를 거듭하며 수없는 정치적 험지에서 살아남은 그가 아닌가. 또한 교묘한 말솜씨와 상황논리가 누구보다 능란한 김 대통령이다. 흔히들 지금 대통령은 레임덕에 걸려 아무런 일도 못할 것이라고 한다. 힘이 빠져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믿어서는 안된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의 막강한 힘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엄청난 자금 동원력과 조직력, 그리고 상상을 절하는 정보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임기말이라 하지만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더욱이 ‘정치 9단’이란 별명처럼 변화난측(變化難測)한 김 대통령 아닌가. 집권세력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정치 중립’을 더욱 믿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 여권 내 난기류가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현재 민주당 내 노무현 대통령후보와 쇄신파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이에 맞서는 비주류세력간의 갈등은 이미 공존의 한계를 넘었다. 갈등의 핵심은 한마디로 노 후보 측이 제기한 ‘탈 DJ’의 내용과 방법론이다. 이미 집권세력 일각에서는 신당론이 나오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노무현 세력을 뺀 나머지 세력이 보따리를 싸서 신당을 창당한다는 것이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노풍’에 대한 기대를 현 집권세력은 이미 접은 것 같다. 신당 창당 일정은 12월 대통령 선거를 감안할 때 9월을 넘기지는 않을 것 같다.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이 필요한, 대통령 선거를 치를 정당 창당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힘있는 세력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김 대통령이 모르는 신당창당이 가능하겠느냐는 말이다(3월 14일자 본란 참조). 특히 각종 권력비리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신당 창당은 정치적 안전판이며 유용한 방어수단 아닌가.

▼신당 움직임 배경 뭔가▼

지금 김 대통령은 탈당 상태다. 권력 주변에선 계속 정치적 중립을 부르짖고 대통령은 탈당이란 차단막 뒤에 있으면 된다. 굳이 전면에 나설 필요도 없다. 권력의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벌어지는 기발한 책략을 일반 시민들이 어찌 다 알 것인가. 탈당은 참으로 절묘한 정치구도를 위한 포석이 됐다. 그러나 그 절묘함은 민심을 거스르고 역사의 바늘을 뒤로 돌리는 것일 뿐이다. 친인척 비리와 권력부패로 벼랑 끝에 몰린 김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최근 행보가 이래저래 심상치 않다. 실지 만회의 반격인가. 그러나 상대는 민심이란 것을 왜 모르는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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