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49…42.195킬로미터 4시간54분22초(21)

  • 입력 2002년 6월 17일 18시 26분


할아버지의 그림자가 몇 십 미터나 앞에 있는 터널로 길게 뻗는다 큐큐 파파 나는 그림자와 노래 소리에 끌려가듯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달린다!

하늘은 청황적색 저녁 노을 떠돌고 차창에는 담배 연기 서릿 서릿 서릿 풀린다 풀린다

할배! 들어주세요 큐큐 파파

이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만이라도 큐큐 파파 내 얘기를 들어주세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툭하면 길을 잃었어요 방향 감각이 둔한 것인지 큐큐 파파 장소에 대한 감각이 마비된 것인지 큐큐 파파 나는 길을 잃어도 한 번도 울지 않았어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태어날 때부터 길 잃은 미아였으니까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아버지와 엄마의 등뒤에는 긴 터널이 있고 큐큐 파파 두 사람은 그 입구와 출구를 침묵과 거짓으로 틀어막고 타향 땅에서 큐큐 파파 하지만 큐큐 파파 늘 터널 앞에 우두커니 서서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아버지나 엄마도 역시 미아였어요 큐큐 파파 언젠가 침묵의 벽이 무너진다면 그 터널을 빠져나가고 싶었어요 큐큐 파파 그런데 아들이 태어나서 그 벽을 무너뜨려야만 하게 되었어요 터널 저 편 끝까지 가서 그곳에서 본 것을 아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어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찾을 수 있을까요? 시체가 묻힌 곳을 찾아 땅냄새를 맡는 개처럼 큐큐 파파 나는 이을 수가 있을까요? 산산이 부서진 뼈를 큐큐 파파 나는 들을 수가 있을까요? 재갈을 물린 채 살해당한 사람들의 언어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나는 할 수 있을까요? 땅을 뒤흔드는 전쟁의 굉음을 전할 수가 추궁당하기 전에 대답할 수가 불타오르는 거리를 끝까지 달릴 수가 한을 품고 가라앉은 혼을 아침처럼 환하게 웃게 할 수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나는 당신의 발소리가 메아리치는 터널을 더듬더듬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할배!

귀여운 내새끼야 너는 내가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자기 이름을 불러보거라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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