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가 보는 '붉은악마'…재미위해 모인 놀이집단

  • 입력 2002년 6월 6일 18시 32분


행복은 잘 정의되지 않는다. 심리학자의 눈으로 보자면 행복에 가장 근접한 개념은 재미다. 행복이란 어떠한 것을 이룬 뒤에 얻어지는 결과라기보다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 느끼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즉 좋은 자동차나 승진을 해서 얻는 만족감보다는 사소한 일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느끼는 재미가 행복에 근접해 있다는 말이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마라톤과 월드컵 응원단인 붉은 악마. 이 두 가지는 최근 한국인들이 행복하기 위해 찾아낸 재미있는 일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가지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연령이 차이난다는 사실이다.

우선 마라톤은 40, 50대가 주로 몰두하는 일이다. 차마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너무 많이 겪은 세대의 마지막 선택이다. 불확실한 시대에 믿을 것은 오로지 내 몸밖에 없다며 내 몸으로 느껴지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이를 극복해내는 환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붉은 악마는 축구선수들의 직업적 행동을 자신들의 재미로 만들어버린 보다 젊은 사람들의 놀이다. 이전 세대들은 TV 앞에 앉아서 골 넣는 장면만을 기다렸다. 이들에게 축구는 골을 넣고 이길 때만 재미있는 놀이였다. 그러나 붉은 악마에게는 비기거나 지는 축구도 재미있다. 경기 내내 함께 이뤄내는 소리와 몸짓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들에게 응원이 승리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붉은 악마에게는 축구의 승리가 자신들의 재미라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즉 수단과 목적이 뒤바뀐 것이다.

따라서 붉은 악마에게 축구는 더 이상 구경거리가 아니다. 자신들이 직접 하는 놀이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경기는 이들의 놀이를 촉발시키는 매개체일 뿐이다. 축구선수들이 축구공을 가지고 논다면 붉은 악마는 축구선수들을 가지고 논다. 자신들의 응원에 축구선수들이 힘을 얻기를 원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상관없다. 자신들의 놀이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삼삼칠 박수나 가끔 흥분한 아저씨의 튀는 욕설에 환호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방식이 없었던 축구응원에 집단응원의 효과를 극대화한 함성과 박수를 도입한 붉은 악마식의 응원은 축구가 생활화된 유럽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는 붉은 악마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했던 혁명집단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연결된 그들의 조직력은 군대의 효율성을 넘어선다. 개인주의가 극대화되어 소속감이 없다던 그 젊은이들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붉은 악마의 비정치적 특징이 약간은 위태로워 보인다. 비정치적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정치적 색깔은 또 다른 맥락에서는 매우 극단적인 정치성을 띨 수 있기 때문이다. 폐쇄적 국수주의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이는 20대의 생동감이 부러운 40대 학자의 기우일 수도 있다. 이들의 집단주의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적 행복을 추구하는 집단주의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재미가 없다면 이들은 절대 뭉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이 일본과의 축구에서 이겨야 하는 것은 붉은 악마에게는 자신들의 재미라는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일 뿐 민족의 운명이 걸린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자신들의 삶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전 세대들에 비해 붉은 악마 세대는 언제든지 행복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재미를 찾아 나서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가 추구하는 재미는 마라톤과 같은 자학적 재미가 아니다. 재미있는 일을 만드는 재미라고나 할까?

재미가 곧 행복이라는 분명한 공식을 깨달은 붉은 악마 세대가 주도할 한국사회는 무척 살 만한 사회가 될 것 같다. 이룰 수 없는 목적 때문에 매사가 불만족스러운 이전 세대들의 특징인 이유 없는 적개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간해선 행복할 줄 모르는 이전 세대들은 삶의 수단과 목적을 뒤바꾸는 지혜를 붉은 악마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재미 있으려고 산다.

김정운 명지대 여가정보학과교수·심리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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