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겼다, 대~한민국!

  • 입력 2002년 6월 5일 01시 25분


우리가 이겼다. 2-0으로 이겼다. 그렇게 목말라 하던 월드컵 본선 첫 승리, 그 소중한 꿈을 드디어 이뤄냈다. 얼마나 기다려 왔던 순간이었나. 90여분 사투가 끝난 뒤 땀에 젖은 모습으로 함께 그라운드에 뒤엉킨 태극 전사들의 자랑스러운 승리다.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서울 세종로의 전광판 앞에서, 그리고 전국 곳곳의 안방에서 함께 붉은 악마가 되어 목이 터져라 “필승 코리아!”를 외친 모든 국민의 승리다. 반세기에 걸친 한국 축구의 숙원은 어젯밤 그처럼 뜨겁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한국 축구의 새 모습은 경이로웠다.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 선수들과 수없이 부딪쳐 나동그라지면서도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불꽃 투혼과 위기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어제의 플레이에선 허망하게 무너지던 예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황선홍의 절묘한 발리슛, 유상철의 캐넌슛에서 우리는 지옥훈련을 통해 철저하게 단련된 전사의 모습을 확인했다. 누가 이 팀을 1년 전 체코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힘 한번 못쓰고 연달아 0-5로 무너진 팀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한국 축구는 48년 만에 꿈을 이뤘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처음 참가한 뒤 그동안 다섯 차례 본선무대를 밟는 동안 네 차례의 무승부에 열 번의 패배가 우리가 거둔 초라한 성적표였다. 그러기에 폴란드전 승리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한국 축구가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 세계 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자긍심이기도 하고, 우리도 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기도 하다.

이 승리는 지난 1년 반 동안 선수들이 쏟은 땀과 정성의 소중한 결실이다. 또한 거스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조련과 용병의 산물이다. ‘오대영 감독’이란 조소와 비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훈련 스케줄에 따라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켜 오늘을 있게 한 히딩크 감독, 그리고 지옥 같은 훈련을 견뎌준 선수들의 노고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지금 우리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한 번도 오르지 못한 16강 고지에 오르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기에 승리의 기쁨에 흠뻑 빠지기만 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다. 폴란드전 승리는 결승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며 선수들은 미국 포르투갈과의 남은 경기에 대비해 다시 전열을 가다듬으리라 믿는다.

승리의 신화를 이어가자. 한국 축구는 충분한 저력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다만 첫 승리의 자신감이 다음 경기에서 자만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온 몸을 내던지는 정신으로 폴란드를 무너뜨린 것처럼 남은 경기에서도 초심(初心)을 유지하면서 정신무장을 새로이 하기 바란다.

우리는 무엇보다 한국 대표선수들이 앞으로도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또 한번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불살라 주기 바란다. 그리고 그 노력이 16강 진출이라는 결실로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장하다, 태극전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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