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이슬람조직이 아태평화 최대 적"

  • 입력 2002년 6월 1일 22시 40분


'아시아 안보' 국제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연설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싱가포르AP연합
'아시아 안보' 국제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이 연설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싱가포르AP연합
1일 싱가포르의 상그리라 호텔에서 개막된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주최 ‘아시아 안보’ 국제학술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아태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깨는 가장 큰 위협은 극단적 이슬람교도들에 의한 테러가 될 것으로 보았다. 기조연설을 한 리콴유(李光耀) 싱가포르 선임장관은 물론 첫 번째로 주제발표를 한 폴 울포위츠 미국 국방부 부장관도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시했다.

회의에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25개국에서 120여명의 정부 고위관리 및 학자, 언론인들이 대표로 참석했다. 일본 영국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말레이시아 필리핀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 10개국은 국방장관이 직접 대표로 나왔다. 아시아에서 이처럼 대규모 국제안보학술회의가 열린 것은 근래에 드문 일로 테러리즘에 대한 이 지역 공동의 우려와 분노를 느끼게 했다. 한국 언론사 중에선 동아일보가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리콴유의 견해〓리 선임장관은 전날(31일) 공식 만찬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아시아 평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중국 일본 3강 사이의 상호관계가 9·11 테러 이후 안정을 보이고 있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이 지역의 안정을 깨는 위험은 국가가 아닌 비(非)국가적 조직들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극단적 이슬람 조직들의 테러가 지역 안정과 평화에 대한 가장 심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온건한 이슬람교도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

그는 9·11 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이 여러 지역의 이슬람 단체들을 ‘지하드(성전)’란 명분 아래 하나로 묶는데 성공했다고 말하고 그 결과 △필리핀의 ‘모로 이슬람 해방전선(MILF)’ ‘아부 사예프(ASY)’ △말레이시아의 ‘쿰프란 무자헤딘 말레이시아(KMM)’ 등과 같은 호전적 테러조직을 양산해 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따라서 “대 테러전쟁은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 아니라 이슬람을 볼모로 잡고 있는 극단주의자들과의 전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리 선임장관은 특히 99년 총선 이후 민주화로 진통 중인 인도네시아를 ‘태풍의 눈’으로 지목했다. 이슬람교도가 2억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가 민주화 과정에서 국가적 통합 유지에 실패할 경우 이슬람 테러조직들의 ‘안식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인도네시아 군부에 기대를 걸었다. 과거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게 군부이긴 하나 그래도 군부가 “종교적이기보다는 민족주의적이며, 국가적 통합의 구심점이기 때문”에 군부를 지원해야 하며 특히 “미국은 인도네시아 군부와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폴 울포위츠의 협력론〓울포위츠 부장관은 미국의 대 테러 전쟁이 미국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역설했다. 9·11 테러의 희생자 중에 일본 중국 한국 호주 뉴질랜드 대만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던 것처럼 테러의 비극적 결말은 단지 미국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한 노력도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는 “그동안 영국 프랑스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은 물론 한국 호주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태지역의 많은 우방국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대 테러전쟁을 지원해 왔다”고 평가하고 이 같은 지원에 기초해서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중단 없이 밀고 나갈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 또한 아태지역 안정의 핵심문제인 미중관계를 낙관적으로 보았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발전과 성장을 환영하며 중국과 대만과의 문제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며 “중국 역시 대 테러전쟁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울포위츠 부장관 역시 아태지역 이슬람교도들에게 주목했다. 5억명에 달하는 이들이 테러조직화되지 않고 테러에 대항하는 세력이 될 때 가장 효과적인 대 테러 동맹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는 이슬람교도들에게 “진정한 전쟁은 자유민주주의와 경제개발을 막거나 파괴하는 세력과 싸우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그들로 하여금 자유민주주의가 주는 축복을 알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싱가포르〓이재호기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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