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부시의 거친 입

  • 입력 2002년 5월 23일 18시 57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입이 또 사고를 쳤다. 취임 이후 종종 말실수를 하더니 이번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피그미’라고 부르며 “밥상머리에서 버릇없이 구는 어린애 같다”고 비유한 사실이 뉴스위크지에 의해 전해졌다. 김 국방위원장이 아무리 밉다고 해도 한 나라의 지도자임에는 틀림없는데 아프리카의 키 작은 원주민까지 끌어들여 험담을 해댔으니 단순한 실언이라고 보기 어렵다. 부시 대통령과 대화하던 미 상원의원들도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은 느닷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3월 “김 국방위원장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다”는 말 한 마디로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덮어버렸고 올 연두교서에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 한반도에 찬바람이 불게 했다. 이번 피그미 발언도 가슴속에 들어 있는 김 국방위원장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드러낸 것일 게다. 그렇다 해도 미국 대통령으로서 품위나 타국 지도자에 대한 기본적 예의는 온데간데없는 언사여서 유감이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히 양국 지도자의 감정싸움에 머문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지만 북-미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정세를 흔들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오자 북한은 “부시는 악의 두목”이라고 반박하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웠다. 북한은 이번 발언을 최고지도자를 향한 극언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 틀림없다. 북-미 관계가 부시 대통령 취임 후 최악의 상황으로 악화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부시 대통령은 그렇지 않아도 신중하지 못한 발언 때문에 나라 안팎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은 “공룡 머리에 참새 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으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도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는 다중 인격장애를 겪고 있다”고 비난했다. 엊그제 독일 방문에 나선 그를 맞이한 사람들은 ‘총의 자식’ ‘전쟁 도발자’라는 플래카드를 든 시위대였다. 실현되기 어려운 주문이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기독교 신자인 부시 대통령에게 다음 성경 구절을 읽어보라고 권할 수는 없을까. “입에 들어가는 것(음식)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말)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태복음 15장 11절)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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