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어린이 인권<上>]학대신고 작년 4133건

  • 입력 2002년 5월 1일 18시 28분


《우리 주변에는 알게 모르게 학대받는 아동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사회적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본보는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아 아동 학대의 실태를 진단하고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한 제도적 문제와 대안을 점검하는 시리즈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유네스코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31일 개막하는 한일 월드컵의 주제를 ‘아동’으로 정했을 정도로 아동 인권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높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00년 7월 아동복지법의 개정으로 아동 학대를 감시할 제도적 장치는 갖춰졌지만 ‘내 아이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다’는 일부 부모의 그릇된 인식과 사회적 무관심 때문에 아직 아동 인권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아동학대 사례〓경기 성남시에 사는 이모씨(28·여)는 재혼한 남편의 여섯 살 난 딸을 6개월 동안 학대하다 남편 친척의 신고로 3월 경찰에 구속됐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씨는 뜨거운 다리미와 불에 달군 쇠젓가락 등으로 딸의 몸에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서울에 사는 최모씨(43)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은둔생활을 하면서 두 자녀(10세, 13세)에게 자신과 같은 생활방식을 강요하고 있다.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보내지 않는다.

부산에 사는 박모씨(26·여)는 남편의 외박에 대한 불만 때문에 한겨울인 1월 두 딸(1세, 2세)을 발가벗겨 대문 밖에 세워 뒀다가 주민의 신고로 구속됐다.

경기도에 사는 정모씨(31)는 의붓딸 김모양(9)을 매일 주먹과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골방에 재우는 등 학대하다가 지난해 1월 아동학대센터에 신고됐다.

정씨는 김양의 친어머니 앞에서 수차례 김양의 성기를 만졌으나 김양의 어머니는 자신도 남편에게서 매를 맞을까봐 보고만 있었다.

서울에 사는 정모양(11) 등 3남매는 아버지가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주 1회 정도만 집에 들르는 등 돌보는 사람이 없어 동네 음식점에서 밥을 얻어먹으며 근근이 살고 있다.

▽아동학대 통계〓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각종 아동보호 전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상담건수는 4105건이나 된다. 하루 평균 11건이나 된다. 상담건수는 97년 807건, 98년 1238건, 99년 2155건, 2000년 3150건 등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상담과는 별도로 전국 17곳에 지역센터를 두고 있는 민간기구인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경기 안양시)는 24시간 아동학대 신고가 가능한 ‘1391’ 신고전화를 통해 지난해 4133건의 신고를 받았다. 조사 결과 절반이 넘는 2105건이 아동학대로 판정됐다.

개정 아동복지법은 누구든지 아동학대를 알게 된 때에는 아동학대 예방센터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담과 신고가 늘어난 것은 이런 신고 제도도 큰 몫을 했지만 기본적으로 아동학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동학대 사례가 신고되면 사회복지사들이 현장에 나가 학대 여부를 조사한 뒤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

그러나 각 지역 아동학대방지센터의 인력이 7, 8명 정도로 부족한 데다 아동학대는 ‘집안문제’라는 기존의 사회적 통념 때문에 조사 활동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장정화(張正化) 중앙아동학대예방센터 상담연구팀장은 “아동학대는 보호자의 양육지식 부족, 가정불화, 성장시 학대받은 경험 등 다양한 원인에서 비롯된다”며 “부모의 양육 태도에 대한 사회적 교육과 심리치료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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