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스타]독일이 자랑하는 '특급전차' 베켄바워

  • 입력 2002년 4월 11일 17시 29분


독일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프란츠 베켄바워(오른쪽)가 88년 유럽선수권대회 대진 추첨을 바라보고 있다.
독일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프란츠 베켄바워(오른쪽)가 88년 유럽선수권대회 대진 추첨을 바라보고 있다.
흔히 ‘스타플레이어 출신은 명감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지도자로 변신하고 나서도 예전의 화려한 스타의식에 젖어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거나 독단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명장들의 현역 시절 이력서를 살펴보면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무명인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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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프란츠 베켄바워(57·독일)는 달랐다. 축구영웅으로 경기장을 누비며 명성을 떨쳤고 감독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탁월한 축구 행정가로 팔을 걷어붙이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타고난 천재성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았다. 또 기회만 나면 공격에도 가담해 현대 축구의 공격형 스위퍼 또는 리베로의 전형을 마련했다는 평가. A매치 103회 출전에 14골 기록.

축구의 ‘카이저(황제)’로 불릴 정도로 명성을 날린 프란츠 베켄바워.gettyimage본사특약

1945년 9월11일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베켄바워는 10세 때인 1945년 FC1906팀에서 처음 축구를 시작했고 59년 바이에른 뮌헨의 주비어팀에 입단했다. 62년 보험회사 견습사원의 자리를 포기하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바이에르 뮌헨과 계약, 직업 선수의 길을 걸었다.

약관의 나이였던 65년 대표팀에 뽑힌 그는 각종 국제대회에서 서독을 우승 단골 손님으로 이끌었다. 월드컵에는 66년 잉글랜드대회에 처음 나서 준우승을 맛봤고 70년 멕시코월드컵 3위에 이어 마침내 74년 서독월드컵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컵을 안았다.

74년부터 76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의 유럽 챔피언스컵 제패도 그의 발끝에서 나왔다. 7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80년까지 축구 불모지 미국에서 프로선수로 뛰며 ‘축구 전도사’로 나섰다.

84년 은퇴한 뒤 곧바로 서독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베켄바워는 86년 멕시코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는 팀에 16년만의 우승컵을 안기며 탁월한 지도력까지 떨쳤다.

2006년 월드컵 유치위원장으로 독일이 월드컵을 유치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해낸 베켄바워.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 정상을 밟은 것은 브라질의 마리오 자갈로에 이어 사상 두 번째였다. 당시 30대의 나이로 지도 경험이 전무했던 베켄바워를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한 결정은 무모하다는 평가까지 들었으나 그는 주위의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내며 역시 ‘카이저(황제)’라는 찬사를 들었다.

특히 90이탈리아월드컵때는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의 통일 독일을 이루는 순간에 월드컵 우승을 이끌어냄으로써 세계적인 주목을 한몸에 받았다.

그의 변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93년 바이에른 뮌헨 구단주로 경영 수완을 발휘하더니 2006년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아 독일이 제18회 대회를 유치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냈고 현재 2006월드컵조직위원장으로 빛나는 활약을 해내고 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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