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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2일 16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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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거짓말〓황사바람이 한풀 꺾인 금요일 이른 오후 2층 찻집 상통다실에서 어르신 7, 8명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집관리를 담당하는 이정자씨(64)가 “나이가 들면 밥해 먹는 일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고 하자 양옥례씨(70) 역시 “혼자 사니 반찬은 그저 ‘때우는’ 정도이고 찬밥 데워먹고 다시 끓여먹고. 밥해 먹는 데서 해방돼 기쁘다”고 말했다. 아내와 70세 동갑내기인 방상진씨는 “여기선 또래와 어울릴 수 있어 좋다”고 자랑. 한 70대 어르신은 “마누라가 고생하면 내가 고생하는 것이고 마누라가 호강하면 나도 호강하는 것”이라며 앞에 앉은 마나님의 눈치를 살폈다.
3대 거짓말 중의 하나가 ‘빨리 죽어야 하는데…’라는 노인의 말이라던가. “죽으러 들어온 사람이 그거 배워서 뭐해”라는 ‘신참’ 할머니를 뒤로 하며 찾은 같은 층 취미실은 ‘젊음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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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방은 ‘꽃을 든 남자’를 열창하는 남녀 어르신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 복도 건너편 에어로빅실에선 할머니들이 한국무용 연습에 여념이 없다. 조민자씨(73)는 “동작순서를 외우는 것도 치매예방에 좋대요”라며 웃는다. 바둑실에선 어르신 두분이 바둑판에, 한분은 훈수에 빠져 있다. 도서실과 찜질방은 한가했다. 수요일엔 찜질방을 동네 사람들에게 무료로 개방, 만원이라고. 작년까지 실버타운 건설 공사에 풀풀 먼지깨나 먹었을 동네 사람들에 대한 보답이다.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집에서 어른 노릇하던 사람들만 있으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는가. 몇몇 어르신들의 ‘권력암투’에 원장 방상복 신부는 한달 전 자치회 회장 자격정지로 맞섰다.
방 신부가 “젊었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다 드러난다. 사랑을 나눈 사람들은 금방 적응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싸움닭이 된다”고 말하는데 마침 황옥순씨(77)가 관리실로 들어오자 농담처럼 “여기 이분도 그 중 하나”라고 소개한다.
황씨가 “신부님 목소리가 허스키한 데다 너무 빨리 말해 강론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반격하자 “들을 필요 없다. 별 얘기 안했다”고 역공.
구내성당의 제단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상만 있고 십자가는 제단 아래 밧줄을 늘어뜨린 채 세워져 있다. 방 신부는 “예수님께서 너무 힘드신 것 같아 2000년 만에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도록 했다”고 자랑하자 김영길 관리과장은 “주교님께 또 야단맞으시려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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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바람〓오후 6시 삼종기도 시간에 마당에 범종을 치러 어르신들이 나선다. 모두 숙연히 기도하는 시간. 저녁식사 후 현관 소파와 관리실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숙부 이완규씨(90)는 풀이 많이 죽은 모습. 이 총재의 빌라사건이 불거진 이후 그렇게 됐다는 것이 주위의 얘기. 방 신부의 관심 분야는 대통령선거보다는 지방선거 쪽이다.
“올해는 대선이다 시도의원선거다 선거가 많아요. 거기다 안성지역은 국회의원 보궐선거까지 치러야 하니 할머니들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꼭 당선되리라 생각지 말고 입후보한다는 데 의미를 두세요.”
방 신부는 젊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의식화교육을 시키다 여의치 않자 안성 출신의 ‘젊은’ 기자를 향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가살림은 살림을 해 본 여성이 맡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만 앞세우는 정치판을 바로잡을 수 있고….”
“살림…해본 적 없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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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실버타운은〓서울에서 차로 1시간 걸린다. 미리내 성지 인근에 있다.
연건평 6045평에 지하 1층 지상 9층 건물. 지하 1∼지상 2층은 공동구역, 3∼9층이 주거시설이다. 전체 250실 중 15실 정도를 제외하고 계약됐거나 입주해 있다. 사회복지법인 오로지종합복지원이 운영하며 지난해 7월 입주를 시작했다.
실평수 11평형 입주금은 혼자 입주할 경우 보증금(이사갈 때 반환) 8000만원에 입소비(반환 안됨) 1000만원. 부부가 같이 입주하면 보증금이 1억원, 입소비가 2000만원이다. 의료비와 전화비는 각자 부담하지만 관리비는 모든 입주자의 사용금액을 합산해 나누는 식으로 정산한다. 어르신들은 관리비를 절약하려고 밤에 복도의 불을 끄러 다니고 공동시설도 내집이란 생각에서 아낀다. 이정자씨의 2월 관리비는 35만6500원이었다.
물리치료사 간호사 등 상근직원이 10명. 성모병원 성빈센트병원과 자매결연해 구급차를 운영한다. 매일 안성시내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031-672-0813
안성〓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