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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3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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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첨단과 유행에 무척 약하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행이라면 히트 상품이 되고 임상실험도 거치지 않은 약품도 첨단 제품이라면 일단 인기를 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 정력에 좋은 약, 피부미용에 좋은 약 등등. 미국에 갔다오는 사람마다 한두 병씩 사오는 게 유행인 적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한국 시장은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 실험장이 되었다는 자조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만이 이렇게 유행과 첨단병을 앓는 것일까.
▷유행과 첨단을 좇는 습관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인간사회라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듯하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인 맬컴 글래드웰은 유행이나 전염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되지만 어느 한순간에 극적으로 확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순간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불렀다. 감기 바이러스가 어느 순간 독감으로 돌변해 무수한 사람을 감염시키는 것처럼 어느 영향력 있는 인물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 후 자살률이 갑자기 껑충 뛰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주의적이라는 서양사회지만 유행이 전염되는 것은 막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냉정하게 이익을 좇는 기업의 세계에서도 유행을 타기는 마찬가지다. 재벌기업들은 과거 건설 석유화학 반도체 등에 너도나도 뛰어들었다가 과잉생산으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던 경험이 있다. 몇해 전부터는 첨단바람이 불어 정보기술(IT)붐, 벤처붐이 일었고 앞으로는 바이오붐이 온다는 말도 있다. 기업이 유행에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이어선 곤란하지 않을까. 엊그제 박용성 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기업들은 첨단병을 앓고 있다”며 ‘들쥐떼 근성’을 비판해 화제다.‘남이 안 하는 것을 찾아서 하는’ 기업이 기다려진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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