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민/제한 상영관

  • 입력 2002년 3월 10일 18시 40분


지난해 8월30일 헌법재판소는 영화진흥법상의 등급보류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이 조항을 근거로 ‘거짓말’ ‘노랑머리’ 등 특정 영화에 대해 등급보류 판정을 내림으로써 연령에 따라 관람할 수 있는 영화의 종류를 분류하는 등급 심의에 머물지 않고 일종의 검열행위를 했다고 해서 물의를 빚은 끝에 내려진 법적 최종결론이었다. 위의 영화들은 등급을 못 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매장될 뻔했었다. 일시적이나마 가위질보다 더한 원천적 금지를 당한 셈이다.

▷모든 영화가 등급 분류를 받아야만 상영이 가능하다면 기존 등급기준의 범주에 들기 힘들다고 판정되는 영화들은 어찌할 것인가. 즉 ‘18세 이상가’로도 허용하기 힘들다고 보여지는 영화를 ‘등급 보류’할 수도 없고, 형법상 음란물 유포죄에 관계되는 법규로 사후에 제재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과연 어찌할 것인가.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문화관광부는 ‘제한 상영관’이라는 제도를 고안해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상정,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통과됐다. 이를 전후로 제한 상영관 설치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영화계 안팎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영화인들이 주장했던 것은 ‘등급외 전용관’이었는데 ‘제한 상영관’과는 개념상 차이가 있다. ‘등급외 전용관’이란 ‘등급 심의 밖에’ 있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관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등급외 전용관’을 주장하는 영화인들은 이 단어를 ‘포르노 전용관’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그러나 법적 규정이 없는 한 공허할 뿐이다. 현재의 우리 법으로 포르노는 불법이다. ‘성인 전용관’이라는 관용적 표현은 가벼운 에로비디오로 출시된 것을 상영하는 극장이라는 정도의 상식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지만 더 애매하다.

▷세 가지 가운데 어떤 단어든 입장에 따라 이를 해석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문화부는 어쨌든 모든 영화가 사전에 등급 분류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전제하고 ‘제한 상영관’이라는 절충적인 시설의 설치 및 운영에 또한 ‘제한’을 두려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여기서 상영될 영화가 어떤 범위의 영화냐 하는 것이다. 논의가 분분하지만 현재로서는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합의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핑계로 ‘등급 분류’와 ‘장소제한’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결합시켜 종전의 위헌적인 ‘등급 거부’나 ‘등급 보류’라는 검열 행태가 또 한번 우회적으로 연출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최민 객원 논설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chmin@knua.ac.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