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JOB]억대 연봉 ‘부동산 MBA’ 뜬다

  • 입력 2002년 3월 6일 17시 58분


국내 굴지의 건설업체 D사에 다니던 유모씨(34)는 연초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명문대 출신에 업무능력도 인정받아 회사에서 ‘성골(聖骨)’로 통하던 그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새로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

그의 꿈은 부동산 관리와 개발사업. 이를 위해 유씨는 미국에서 ‘부동산 MBA’로 불리는 MRED(Master of Real Estate Development)를 이수할 계획이다.

부동산 업계의 인맥에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복덕방 할아버지’로 통하던 시대는 옛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사람이 바뀌는 것은 부동산 업계의 질서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 과거에는 학위나 자격보다는 든든한 자금력과 ‘감(感)’이 중요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땅만 갖고 사업하던 시대는 지났다. 부동산업이 주먹구구식 개발방식에서 금융기법을 접목한 ‘첨단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석·박사급이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변호사나 회계사 등이 앞다퉈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인 전문가 시대가 열린 것.

▽부동산 MBA가 뜬다〓지난해 이후 미국 부동산학 석사인 MRED 소지자가 급부상했다. MRED는 부동산 이론과 금융 자산관리 등을 결합한 개발 전문가 과정. 미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됐으나 한국에서는 2000년 초에 MRED 1세대가 출현했다. 현재 활동 중인 MRED 소지자는 50여명. 주로 외국계 부동산 회사에 근무 중이다.

‘코리아 에셋 어드바이저즈(KAA)’의 양미아 차장(34)은 98년 말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 광화문에 있는 서울파이낸스센터빌딩 건물의 관리와 운영을 맡고 있다. 서울의 명소로 떠오른 이 건물의 지하 아케이드는 그의 작품이다. 빌딩의 연간 수익률도 주변 건물보다 3%포인트 이상 높다는 게 주변의 평가.

양 차장은 “과거에는 빌딩 주인의 친인척이 건물을 관리했지만 요즘에는 부동산이 경영자산으로 인식되면서 전문가들에게 위임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다국적 부동산 컨설팅업체 ‘아더 앤더슨 GCF’의 김주현 컨설턴트(30)는 드물게 대학 때부터 부동산학을 전공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에서 부동산금융을 배웠다. 광주은행 사옥과 용평리조트 가치 평가 등 굵직한 사업을 처리했다.

다국적 부동산관리업체 ‘CBRE’의 한국지사 토니 최 사장(38)은 하버드대에서 주거용 부동산 개발을 전공한 실력파. 미국에서 7년 동안 3조원 규모의 부동산을 관리했다. 한국에서는 제일은행 본점 임대관리를 대행하고 푸르덴셜생명의 본사 매입을 중개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박사도 쏟아져〓풍부한 이론적 기반을 갖춘 박사들도 줄지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미국 조지아대 출신 김영곤 박사(45)는 부동산 경영학을 전공했다. 상업용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오피스월드 고문과 강남대 교수를 겸임하고 있으며 부동산투자회사인 존스랑라살의 초대 한국 지사장을 지냈다.

GE캐피탈 최영국 사장(42)도 미국 MIT대에서 부동산학 박사를 취득한 후 개발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인터넷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이상영 사장(40)은 서울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99년부터 아파트값을 주가처럼 지수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밖에 코리츠의 김우진 사장과 저스트알 김관영 사장 등도 박사 학위 소지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변호사 회계사도 부동산업에 진출〓부동산업에 전문지식이 요구되면서 변호사나 회계사의 참여도 늘어나는 추세. 작년 말 경기 용인 수지에서 1000여평 규모의 근린상가를 분양한 조영호 변호사(42)는 건설사를 직접 차려 경영에 나섰다.

김유신 변호사(34)는 중소 시행사와 연계해 토지매입에서부터 분양까지 관여한다. 작년 말 서울 강남 등지에서 오피스텔을 분양해 분양 당일 모두 마감시키는 실적을 올렸다.

이밖에 부동산 프랜차이즈 업체 ‘부동산 서브’의 이인경 사장(42)은 공인회계사 출신.

▽억대 연봉 시대 열렸다〓부동산 전문인력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모자라 이들의 몸값도 만만치 않다.

MRED 소지자의 경우 1억원 이상 연봉을 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아서 앤더슨 GCF 한미숙 과장은 “철저하게 실력으로 평가되는 만큼 개인별 연봉은 천차만별이지만 2억원 이상 받는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경영학 MBA 소지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대우다.

이 때문에 MRED 취득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KAA 양미아 차장은 “99년만 해도 미국 대학에서 부동산학을 전공하는 한국인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급증하는 추세”라며 “전문인력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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