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태의 월가리포트]진동하는 엔론악취

  • 입력 2002년 2월 14일 17시 45분


사람 사는 사회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교통질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거리에서는 한국보다는 교통질서가 더 잘 지켜진다. 교차로 신호등은 물론 ‘STOP’ 표지판에서도 말 그대로 ‘완전히 정지’했다가 출발한다. 골목길에서 나올 때는 멀리서 오는 차가 보이기만 해도 그냥 나가지 않고 그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뉴욕 맨해튼의 사정은 아주 딴판이다. 서울보다 약삭빠른 운전자들이 많다. 보행자가 건널목 신호를 지키는 않는 것도 다반사다. ‘Don’t walk’라고 깜박거리는 건널목 정지 신호는 ‘걷지 말고 뛰어 건너라’는 뜻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이 같은 모습을 보면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은 어쩔 수 없나보다’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적으로 미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은 기업회계에 관한 한 그 어느 나라보다도 규정을 잘 지킨다고 믿어진다. 매분기 발표되는 기업 실적에 투자자들이 귀 기울이는 것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론이라는 한 에너지 업체의 규정위반 사건 이후 이 같은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지금 미국은 부도기업 엔론에 관한 소식들이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엔론 파장의 한 줄기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심장부를 노리면서 워싱턴 정가를 강타하고 있고, 또 다른 한 줄기는 월가를 흔들고 있다. 엔론이 지난 수년 동안 회계 장부를 조작해 온 것이 밝혀지면서 미국증시에 상장되어 있는 또 다른 많은 기업들의 주가도 크게 떨어졌다. 혹시 다른 기업도 그렇지 않나 하는 의혹 때문이다. 이번 주 들어서는 시장이 다시 안정을 되찾고 있지만, 주가가 하락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기업 회계의 투명성에 대한 우려가 악재로 거론되곤 한다. 한국에서도 파산한 기업들의 분식회계가 여러 차례 문제가 되긴 했지만 문제가 이 같이 크게 확산된 경험은 많지 않다. 기업들의 회계 조작이야 어느 나라에서나 있는 일이지만 미국 증시의 엔론 파장은 ‘기업 회계에 관한 한 우등생’이라고 믿어지는 나라에서 벌어진 일탈행위이기에 충격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때마침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업들의 실적발표를 앞당기고 정보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규정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증시가 상승하기 위해서는 ‘주식회사 미국’이 좀 더 투명하고 깨끗해져야 한다”고 전문가들과 투자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아닌가? 사람 사는 사회가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든다.

김남태<삼성증권 뉴욕법인 과장>knt@samsu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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