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구천서이사장의 '과욕'

  • 입력 2002년 2월 6일 18시 39분


노동부 산하단체인 산업인력공단 구천서(具天書) 이사장이 경선을 거쳐 대한태권도협회장으로 선출된 것에 대해 노동부와 산업인력공단 직원 사이에서는 축하보다는 빈정거림이 오가는 분위기다.

14대(민자당)와 15대(자민련) 의원을 차례로 지냈던 구 이사장은 작년 5월 자민련 배려 차원에서 임기 3년의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으로 내려왔다. 그는 공동정부가 깨진 후에도 그 자리를 계속 지켜왔다.

산업인력공단은 직업훈련과 자격검증의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사회가 급변하면서 직업훈련과 자격검증의 내용과 수준도 사회의 뜀박질을 발빠르게 따라잡아야 한다. 하지만 구 이사장은 산업인력공단을 혁신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게 노동부 측의 진단이다.

더구나 청년 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직업훈련을 총괄하는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이 할 일 많은 태권도협회장을 겸임하면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노동부 측은 구 이사장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는 정치인 출신으로 위세가 장관 못지않기 때문이다. 구 이사장은 이번 태권도협회 경선 출마도 사전에 노동부에 알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노동부는 다른 수단이 없다. 이사장의 경우 다른 직책을 겸할 수 없는 게 원칙이지만 협회장 자리는 ‘무보수 비상임 명예직’이기 때문에 법적으론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구 이사장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게 노동부 공무원들의 지적이다. 지금보다 2배 이상 더 역량을 발휘해 산업인력공단과 태권도협회를 모두 잘 이끌든지, 아니면 한 자리를 포기해 어느 한쪽이라도 제대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 이사장이 태권도협회장으로 ‘외도(外道)’에 나서자 노동부의 한 직원은 “전직 의원이든, 낙하산이든 이사장이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 누가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구 이사장이 이러한 분위기를 얼마만큼 파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 진기자 사회2부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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