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송호근/"장관?사양하겠습니다"

  • 입력 2002년 2월 5일 18시 14분


한국과 같은 출세 지향적 사회에서 장관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 존경과 명예의 징표이자 입신의 완성을 의미한다. 국사를 수행할 자격을 부여받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과 인품이 공인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개각을 전후해 전화통을 붙잡고 ‘천명’이 점지하기를 고대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고,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들의 숨은 얘기가 한동안 세간에 회자되곤 했던 것이다.

▼여론무마용 방패막이 전락▼

그런데 이런 풍속도는 현정부 들어 크게 바뀐 듯하다. 1·29개각만 하더라도 요 며칠 비판 여론이 비등하더니 그만 잠잠해졌다. 대통령의 인선스타일에 새삼스레 호들갑을 떨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체념 탓이기도 하고, 누가 발탁되든 임기 말년의 개혁이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기도 할 터이다. 아무튼, 현정부 들어 유난히 잦은 개각으로 인해 장관 값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가슴 벅찬 사명감은 잠시일 뿐, 부정부패의 연쇄사슬 속에서 몸을 제대로 간수하기도 어려워졌으며, 뜻을 세우기도 전에 문책인사와 정국쇄신의 명분으로 폐기처분되는 운명에 처하는 일이 잦은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장관은 조선시대의 판서에 해당한다. 과거에 급제한 수많은 인재 중에서도 학식과 인품이 가장 뛰어나고 기개가 강직한 사람이 아니면 최고의 관직에 등용될 수 없었다. 판서는 일종의 평생직장과 같아서 직언과 읍소로 임금을 괴롭히는 신하를 삭탈관직하기도 어려웠다. 어의(御意)보다 유교의 통치철학을 더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직접 비유하기는 좀 뭣하지만, 대통령의 ‘의중’을 못 읽는 장관일수록 우선적인 퇴출대상이 되는 요즘과는 너무도 달랐다. 자율적, 개방적 언로가 더욱 필요한 민주주의 시대에 장관의 단명과 값어치 하락은 어쩌면 통치술의 저급함을 시사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정이 이러하니 장관직을 고사하는 사람이 나올 법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독재정권 때보다 민주정부에서 장관의 단명화가 심화되었다는 사실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전두환 정부 때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8.3개월, 노태우 정부는 13.7개월이었음에 반하여, 김영삼 정부는 11.6개월, 김대중 정부는 10개월이 채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교육 해양 법무부 장관은 여섯 번, 재경부 장관은 네 번 바뀌었고, 정책기획수석은 일곱 번째, 정무수석은 여섯 번째 인물이 새로 앉았다. 임명장을 받자마자 경질된 사람도 두엇 있다. 영욕의 낭떠러지에서 번지점프를 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인사의 무원칙성이 부가된다. 새 내각의 면면은 부패스캔들로 얼룩진 국정에 일대 쇄신을 기대했던 국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냈던 것이다. 박지원 같은 사람을 밖에 두고는 못 사는 그 고집스러운 배려는 소모품으로 활용된 일단의 사람들과 무척이나 대조적이다. 아무튼, 이처럼 경질이 빈번했다는 것은 대통령 주변과 정부부처가 지극히 어수선했음을 뜻한다. 관료들은 신임장관들의 성향 파악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며, 국무회의에서 각료들은 대통령의 의중을 짚으려고 독심술에 매달렸을 것이다.

민주정부일수록 장관의 단명화가 재촉되고 인사가 무원칙하게 이루어지는 현상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혹자는 대통령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다른 이는 각료들에 대한 대통령의 끊임없는 불신을 얘기하기도 한다. 혹시, 대통령의 유식함에 견줄 인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주목하고 싶은 점은 개혁의지와 정부 역량간의 커다란 격차다. 개혁의지는 높지만 역량이 부족한 소수정권일수록 개혁정치는 표류하기 쉽고 그만큼 실수가 잦아지게 마련이다. 막힌 통로를 뚫어야 하는 절박함은 통치자로 하여금 새 인물에 항상 갈증이 나게 만든다. 자주 교체될수록 정책 일관성은 떨어지고, 장관의 말은 영이 서질 않는다. 통치의 논리와 윤리를 바로잡던 예전의 대감(大監)은 이제 정국쇄신과 여론무마용 방패막이가 된 것이다.

▼"뜻 있는 인사는 몸 사릴때"▼

그러므로 장관을 수시로 바꿔서라도 개혁정치를 완수하고 싶은 다급함이 읽혀질 때, 청운의 뜻을 품은 정 관 학계와 재계의 인사들은 몸을 사리는 것도 좋을 듯하다. ‘가문의 영광’이자 ‘성은이 망극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모르겠거니와, 개각이 있을 때 전화통을 멀리하고, 그래도 전갈이 온다면 점잖게 고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장관이 안 되는 법’을 익혀야 하는 시대는 어쩐지 서글프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