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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2월 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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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이런 끼리끼리 인사를 막기 위한 제도가 있었다. 일가친척 등 가까운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벼슬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도가 그것이다. 권력의 집중과 전횡을 방지하기 위한 이 제도는 대개 친계 모계 처계로 4촌 이내와 그 배우자는 같은 관청에서 일하지 못하게 했다. 처음에는 철저히 실시되지 않다가 조선 후기에는 규정이 더욱 강화되어 과거 응시자와 시험감독인 시관 사이에도 적용되었다. 지방관의 경우에도 특별한 연고가 있는 지역으로의 임명은 금지되었다. 그러나 외척의 세도정치 등으로 상피정신이 흐려지면서 조선의 국운은 기울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후에도 상피정신이 한때 강조된 적이 있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취임 직전에 김 대통령의 가신 출신인 이른바 ‘동교동계’ 인사들이 일체의 임명직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었으나 결국은 지켜지지 않았다. 검찰 경찰 국세청 등 권력기관에서도 출신지나 연고지 임명을 피하는 상피제도나 향피(鄕避)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별 성과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정부는 4일 차관 인사를 하면서 새삼스레 상피주의 원칙을 적용했다고 한다. 지역안배를 철저히 고려해 장관과 출신지역이 같은 차관급 인사는 우선 교체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차관급 인사폭도 늘어나고 엉뚱하게 자리를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주요부처 요직에 대한 특정지역의 편중을 막는다는 게 상피제도 재도입의 명분이다. 굳이 내팽개쳤던 제도를 다시 집어든 건 왜 일까.그동안 편파인사가 너무 심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가까운 동향사람을 주로 썼다가 참담하게 실패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번 차관인사에서도 연고주의 인사의 흔적은 여전한 것 같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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