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킬러 인스팅트'

  • 입력 2002년 1월 29일 18시 53분


가장 재미있는 야구경기를 지칭하는 말로 ‘케네디 스코어’라는 게 있다. 1960년 대선출마를 선언한 케네디가 TV토론회 자리에서 “어떤 스코어의 야구경기가 가장 재미있느냐”라는 질문에 “8 대 7”이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된 것이다. 하긴 지루하지 않을 만큼 점수가 나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한 점 차의 승부는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그러나 그만큼 나오기 어렵다. 국내 프로야구만 봐도 케네디 스코어는 100경기에 한 번이 채 나오지 않는다. 9 대 8을 뜻하는 ‘루스벨트 스코어’도 있다고 하나 8 대 7에 비해서는 아무래도 긴박감이 덜하다.

▷축구에서는 3 대 2 승부를 가장 재미있는 경기로 친다. 축구광으로 자부하는 브라질 관중이 이 스코어에 가장 열광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펠레 스코어’다. 8년 전 미국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에 2 대 3으로 졌을 때 독일기자들까지 ‘최고의 명승부’라고 감탄한 것도 그만큼 경기가 박진감 넘쳤기 때문이다. 반대로 가장 재미없는 경기는 0 대 0으로 끝나는 경기일 게다. 축구 보는 재미는 뭐니 뭐니 해도 ‘골 맛’인데 전 후반 내내 한 골도 터지지 않아서야 선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뛴들 보는 입장에선 하품 날 노릇이다.

▷월드컵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선수들은 킬러 인스팅트가 없다”고 나무랐다는 얘기다. 스포츠 심리학에 등장하는 ‘킬러 인스팅트’는 승부근성, 또는 끝내기 능력을 의미하는 말이다. 학자들 사이에서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는 최고의 킬러 인스팅트를 가진 선수로 평가된다. 마지막 라운드에 입고 나오는 빨간 셔츠는 다른 선수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국내에선 프로야구의 선동렬이 같은 케이스로 불릴 만하다. 그가 등판하는 시늉만 해도 상대 선수들은 주눅이 들어 헛방망이질 하기가 일쑤였으니까.

▷축구에서 킬러 인스팅트라고 하면 ‘골을 넣으려는 근성’ 정도로 풀이되겠다. 하긴 올 들어 월드컵팀이 4차례 경기에서 넣은 골이 단 한 골뿐이라니 히딩크 감독이 열 받을 만도 하다. 다른 경기도 그렇지만 축구 역시 골을 넣어야 이긴다. 골을 안 먹는 것만 가지고는 고작 비기는 게 최선이다. 그렇다고 승부차기에서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그러기에 한 골도 주지 않겠다는 생각보다는 한 골을 주더라도 두 골을 넣겠다는 각오로 뛰어야 월드컵 16강도 바라볼 수 있다. 그러다가 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수비만 하다가 0 대 0으로 모양 사납게 비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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