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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월 25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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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양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것은 6·25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난 1957년. 당시 국제아동후원단체인 ‘양친회(Poster Parents Plan)’는 한국의 불우한 가정의 자녀들과 미국, 유럽 등지의 후원자들을 연결해주는 사업을 벌였다.
이 사업을 통해 헤이그 여사는 박 교수를 양자로 삼았으며 매달 일정액을 박 교수의 모친에게 보내왔다. 또 크리스마스나 박 교수의 생일 때면 잊지 않고 옷가지나 학용품, 동화책 등을 보내주기도 했다.
당시 양친회 회원과 한국어린이들의 관계는 5∼6년 정도면 끝나는 게 보통이었지만 헤이그 여사는 박 교수가 연세대 3학년이 될 때까지 10년 이상 후원을 계속했다.
그러나 박 교수가 군에 입대하면서 양어머니와의 연락이 끊어졌다. 박 교수 가족이 이사를 간 데다 헤이그 여사의 주소지도 바뀌었기 때문. 박 교수는 미국 텍사스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양어머니의 뉴욕 주소지로 몇 번 찾아갔지만 만날 길이 없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양어머니의 행방을 모른다.
“당시 양어머님이 보내주신 후원금도 큰 보탬이 됐지만 그보다 더 큰 도움은 그분이 제게 주신 삶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내 첫 아들에게(To my first son)’라는 제목으로 보내주신 격려 편지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헤이그 여사와 박 교수를 맺어준 양친회는 1979년 한국에 대한 후원사업을 중단했다. 한국은 그동안 후원 대상국이었으나 1996년 ‘플랜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후원을 해주는 양친회의 정식 회원국이 됐다.
박 교수는 양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2년 전부터 플랜코리아를 통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소년 1명씩을 양아들로 삼아 후원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달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양친회의 도움을 받아 자수성가한 20여명을 모아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후견인들’이란 모임을 만들어 구호물자 보내기와 1대 1 결연사업을 벌이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처한 어린이들에게 단 돈 몇 달러도 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나의 경험으로 볼 때 따뜻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고통받는 어린이들의 삶을 바꿀 수 있어요.”
플랜 코리아(인터넷 홈페이지 www.plankorea.or.kr·02-3444-2216∼8)
아프가니스탄 어린이의 후견인들(02-782-7633)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