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홍찬선/재경부의 낙하산 군침

  • 입력 2002년 1월 4일 18시 12분


요즘 새해 덕담을 나누는 재정경제부 관료들의 얼굴은 활짝 피어 있다. 현재 공석이거나 4월까지 임기를 마치는 산하 금융기관의 자리가 20∼30개나 되기 때문이다. 재경부 국장급 이상이면 이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어 대폭적인 연쇄 승진까지 기대하고 있다.

1급(관리관) 이상이 갈 수 있는 자리만 해도 증권거래소 이사장, 코스닥증권 사장, 금융감독원 부원장(2명)과 감사, 금융통화위원회 위원(3명), 종금협회장 등 10여개나 된다. 국장급이 앉을 수 있는 자리 역시 은행연합회 부회장, 예금보험공사 전무, 보험개발원장 등 10개가 넘는다.

재경부의 한 국장은 “비는 자리를 모두 재경부 출신이 차지하지는 못할 것”이라면서도 “재경부 출범 이후 최대의 장이 설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재경부의 축제 분위기와는 달리 금융계는 속을 태우고 있다. 끊임없는 ‘낙하산’으로 자체승진이 어려운 탓이다. 한 증권사 사장은 “현재 증권금융 코스닥증권 코스닥위원회 증권전산 등 여의도에 있는 증권 유관기관장은 모두 재경부 출신”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틈만 나면 관치금융을 끝내겠다고 다짐하지만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는 줄지 않고 있다. 물론 금융기관의 장(長)이나 임원을 반드시 해당 금융기관 출신자로 앉히는 ‘순혈주의’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영입돼 뛰어난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재경부의 엘리트 관료출신 가운데 일부는 금융기관에 가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능력보다는 정치권이나 유력인사에 줄대기를 잘해 자리를 차지한 ‘낙하산 수장’이 해당 금융기관을 부실화한 사례가 더 많은 것 아닌가.

금융기관 요직이 재경부 출신자의 노후 생활을 보장해주는 관행은 언제 고쳐질 것인가. 이번 기회에 제안하고 싶다. 재경부 실력파라면 좁은 국내 무대에서 낙하산 시비에 말려들지 말고 세계은행, 유럽개발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관에 도전해보라고….

홍찬선 경제부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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