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세상은 꿈꾸는 자의 것 '알렉산드로스'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11분


알렉산드로스 (전3권)/발레리오 M. 만프레디 소설/각 500쪽 내외 9000∼1만1000원 들녘

“열이 내리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소. 열은 내리게 되어 있소. 난 전진하고 싶소.”

그는 기어코 세상의 끝을 보고자 했다. 전장에서 열한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그조차 정체불명의 열병이 저승 사자인줄 알았던 것일까. 최후까지 ‘향료와 알로에와 몰약(沒藥)의 땅’ 아라비아를 정복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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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인 기원전 323년6월10일, 바빌론에서 위대한 별 하나가 떨어졌다. 당시 33세. 12년만에 이집트에서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 문화가 처음으로 이종교배된 헬레니즘의 물꼬를 튼 정복자. 그래서 케사르로부터 네로, 루이14세, 나폴레옹, 카스트로에 이르기까지 많은 권력자의 이상형이 된 인물.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B.C.356∼323년)이었다.

유럽에서 낙양의 지가를 높였던 이 역사소설은 알렉산더란 애칭으로 더 잘알려진 알렉산드로스 3세를 현재에 되살린 유장한 영웅 대서사시다. 페이지마다 2300여년전 중동의 광활한 모래바람이 눈 앞에 선연하게 펼쳐지는 가운데 피비린내가 코 끝을 스치고 승리의 함성이 귀청을 때린다. 하지만 이 책이 살점이 튀는 근육질의 무용담으로만 채워졌다면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000천만부가 팔릴 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알렉산드로스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가차없던 정복자로 화석화되어있지 않고 다양한 인격을 가진 인물로 되살아났다는 점이다. 그가 문무(文武)와 지예(智藝)를 겸비해 동서양의 문물 교류(헬레니즘)의 초석을 놓은 최초의 르네상스맨이었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예술을 사랑한 지식인으로 전장에서도 그는 13세때 역사와 철학을 가르쳐준 아리스토텔레스가 선물한 ‘일리아스’ ‘오디세우스’를 항상 옆에 두고 탐독했다. 또 민족과 종교를 가리지않고 중용한 만민동포관(萬民同胞觀)을 보여준 최초의 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이기도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폴리스 국가인 아테네와 테베를 무찌르고 그리스를 점령한 부친 필리포스왕이 암살되자 20세에 마케도니아 왕좌에 올랐다(B.C.336). 부귀영화가 보장된 그였지만 곧 권좌를 섭정자에게 물려주고 동방 원정을 떠났다. 왜 그는 스스로 죽음의 길을 자초한 것일까.

그가 원정을 떠나기 전에 모든 재산을 다 나누어 주자 이를 염려한 신하가 묻는다. “그러면 폐하는 무엇을 가지고 가시렵니까?”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답한다. “나는 희망을 가지고 떠난다.” 그 ‘희망’이란 무엇이길래 그토록 정복에 목말랐을까.

이 작품은 영웅 없는 시대에 영웅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신화연구가인 조셉 캠벨은 영웅을 “삶을 자기보다 큰 것(greater than himself)에 바쳐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된 사람”이라 정의한다. 영웅의 그리스어인 ‘헤로스(heros)’는 원래 신인(神人)을 뜻한다.

작가는 알렉산드로스가 바친 ‘자기보다 큰 것’은 바로 ‘신의 적자(嫡子)’라는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본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중요한 것은 그가 스스로 이 점을 굳게 믿었다는 점이고, 이 운명을 증명하고자 자신을 바침으로써 결국 한 시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신인(神人)이라기보다 반신반인(半神半人)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렇다고 알렉산드로스에게도 영웅의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추위와 배고픔 같은 죽음의 고통을 인내하는 헤라클레스의 덕목만이 아니라 주색(酒色)의 도취를 즐기는 디오니소스의 덕목이 공존한다. 자신에게 반항하는 장군에게 창을 날린 뒤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살을 시도하며 울부짓는 모습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이런 에피소드는 페르시아와의 마지막 대전인 가우가멜라전투에서는 2만여명의 군사로 50만명의 정예 적군을 게릴라전으로 이긴 명석함과 좋은 대비를 이룬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란 저홀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 의 사마천(司馬遷)은 신산(辛酸)을 같이 할 가까운 친구라도 공업(攻業)은 나누기 어렵다고 했지만 그의 친구는 그러지 아니하였다. 한 나라를 통치할 만한 역량을 가진 ‘철의 사나이’들이었지만 항상 동고동락하며 충성과 우정으로 지도자를 보필했다.

이런 점에서 “알렉산더의 신화에 피와 섹스, 아드레날린을 채워넣은 것 뿐”이란 일각의 혹평은 부당해보인다. 영화처럼 생생한 상상력의 근저에는 엄정한 고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2300여년 전 당시의 음식과 의복, 노래, 저주와 맹세의 말들, 심지어 매춘부의 기원까지 소상히 되살려 놓았다. 인물의 대화에서는 그리스 희비극의 어투를 세심하게 차용해 격조를 높인 점도 돋보인다. 이는 중동의 화약고가 된 알렉산드로스의 전장을 지프차로 누비며 현장을 답사한 ‘이탈리아 고고학계의 인디애나 존스’(저자의 별명)의 공력으로 가능했다.

짧았으나 파란만장했던 영웅의 이야기를 다 읽은 독자는 한가지 질문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자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가.

그 해답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지배하는 힘 만큼의 지배력을 가진 존재란 사실. 정복되지 않는 영혼의 위대함을 노래한 영국 시인 윌리엄 E 헨리의 ‘인빅투스(Invictus·1975)’의 한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 나는 내 영혼의 선장(I am the master of my fate / I am the captain of my soul)”. 이현경 옮김, 원제 ‘Al´exandros : Il Figlio Del Sogno’(1998).

▼알렉산드로스 연보

▶B.C. 356년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땅에서 태어남

▶B.C. 343년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과 역사를 배움

▶B.C. 338년

부친 필립왕이 아테네-테베 연합군을 물리치고 그리스 전체 정복

▶B.C. 336년

필립왕 암살됨, 20세 알렉산드로스가 마케도니아 왕에 오름

▶B.C. 334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섭정자를 임명한 뒤 동방 원정길을 떠남

▶B.C. 324년

12년간 소아시아의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정복 페르시아군을 격파하여 인더스강까지 점령

▶B.C. 323년

인도 북방까지 진출하였다가 퇴각

바빌론에서 열병에 걸려 33세 나이로 사망

▶B.C. 30년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제국 건설까지 3세기간 헬레니즘 시대 번창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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