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뭐하는 정부인가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46분


중국에서 마약범죄 혐의로 구속 수감중인 한국인 박모씨(71)가 “수사과정에서 포승줄로 맞고 수염을 뽑히는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얼마 전 중국 정부가 우리측에 사전 통보조차 없이 한국인 마약범을 사형시킨 일을 계기로 부랴부랴 감옥을 방문한 우리측 영사에게 박씨가 호소했다는 내용이다.

범죄자 여부를 떠나서 우리 국민이 중국에서 사형당하고, 감옥에서 사망하고, 고문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질 때까지 손놓고 있던 외교통상부의 직무 유기도 개탄스럽지만 언론에 대서특필된 뒤에야 사실 확인에 나서는 ‘뒷북치기 외교’도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국인 4명이 중국에서 마약범 혐의로 체포된 게 1997년 9월이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9월에 처형됐고 다른 한 사람은 작년에 감옥에서 병사했으며 박씨 등 나머지 두 사람은 각각 무기징역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외교부가 한 일이라고는 재판과정을 문의하는 공문을 한 차례 중국측에 보내고 구두로 요청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한다.

국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자국민 보호에 있다. 특히 낯선 외국 땅에서 우리 국민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대사관 등 재외공관뿐이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과연 국민이 정부를 믿고 의지해도 괜찮은 것인지 의심스럽다. 1995년 싱가포르에서 경범죄를 저지른 미국 청소년이 태형(笞刑)에 처해지자 빌 클린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공정한 법집행을 요구하는 친서를 보낸 일과 비교해 보면 우리 외교의 현주소는 너무나 초라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원천적인 문제는 중국측에 있다. 조만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다는 나라가 외국인 범죄자를 그렇게 처리해도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특히 박씨를 고문까지 한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는 중국도 가입한 국제고문방지협약의 위반이며 심각한 국제적 인권침해 사례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도 자국 내 인권침해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한 바 있지만 중국 정부는 이번 일을 자국내 인권상황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뒤늦게 중국측에 박씨에 대한 가혹 행위 여부를 문의하는 등 뒷수습에 나섰다. 중국측에 진상 파악 및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정부는 외교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재외공관의 영사업무부터 철저하게 재점검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