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배호 노래비’

  • 입력 2001년 10월 24일 18시 39분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가수 배호가 스물아홉의 나이로 요절한 것이 1971년이니 어언 30년 세월이 흘렀다. 그 긴 세월 동안 배호는 떠났어도 그의 노래는 늘 대중 곁에 머물러 있었으니, ‘안개 낀 장충단 공원’ ‘누가 울어’ ‘안개 속에 가버린 사람’ ‘당신’…. 사오십대 중장년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봤을 노래들 아닌가.

▷오랜 대중가요는 부르는 이들의 추억과 함께 한다고 한다. 애환(哀歡)이라고 부르는 삶의 여러 기억들, 노래는 그 갈피갈피마다에서 빛바랜 사진처럼 추억을 되살린다. 배호의 노래가 널리 불리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 그 궁핍하던 시절 어렵게 살아가던 이들에게 일상의 고단함을 달래주던 트로트 가락이 어찌 쉬이 잊혀지겠는가. 하여 가수가 떠나고 세월이 흘러도 노래는 남는 것.

▷연전에 작고한 작곡가 박시춘 선생은 “배호야말로 백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저음인 듯 하면서도 열여덟 음(音)을 모두 소화해내는 가창력에다 특유의 호소력 있는 장조(長調)가 곁들어져 듣는 이의 마음을 깊이 끌어당기는 ‘최고의 대중가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록과 랩 뮤직을 즐기는 요즘 젊은이들 중에도 ‘배호 마니아’가 있다고 한다. ‘대가’는 역시 장르를 넘나드는 모양이다.

▷배호의 노래비가 내달 7일 삼각지 로터리 이태원쪽 길목에 세워진다고 한다. ‘돌아가는 삼각지’의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인 배상태 선생(67)이 회장을 맡고 있는 ‘배호를 좋아하는 사람들’ 회원 20여명이 92년부터 준비한 노래비 건립이 10년 만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적은 수의 회원들이 그동안 십시일반으로 비용을 염출하고 용산구청에서 얼마를 후원해 어렵사리 성사됐다고 한다. 높이 3.6m, 너비 1.4m가량인 노래비에 실릴 노랫말은 역시 ‘돌아가는 삼각지’. 비가 세워지는 날 배호의 영혼이 삼각지를 찾을까.

<전진우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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