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본 '이용호 속셈']정치권에 경고 메시지?

  • 입력 2001년 10월 3일 18시 39분


지앤지(G&G) 회장 이용호(李容湖)씨가 다시 입을 닫았다.

검찰은 추석연휴 중에도 이씨를 불러 정치권 로비의혹 등을 추궁했지만 이씨는 아무 것도 털어놓지 않았다고 수사팀 관계자가 3일 전했다.

이씨는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는 민주당 박병윤(朴炳潤) 의원에게 후원금 1000만원(박 의원은 2000만원 받았다고 시인)을 줬다고 털어놓았다. 조홍규(趙洪奎·한국관광공사 사장) 전 의원에게 후원금을 준 사실과 민주당 강운태(姜雲太) 의원을 찾아갔던 일도 술술 털어놨다.

그러나 이씨는 검찰에 돌아와서는 ‘자물통’ 행세를 계속해 수사팀을 난감하게 하고 있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씨가 정무위 국감에서 정치인에게 돈을 줬다는 사실을 털어놔 약간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이전의 태도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며 “이씨는 우리(검찰)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작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씨는 왜 정무위 국감에서 뜻밖의 ‘폭로’를 했을까. 여러 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씨의 폭로도 일종의 ‘사업’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가능할 것 같다. 철저한 계산에 따른 것이라는 뜻이다.

그 근거는 이씨의 폭로 내용. 이씨가 박 의원에게 돈을 줬다고 하자마자 당사자인 민주당 박 의원은 바로 등기우편으로 발송한 후원금 영수증을 제시했다. 불법 정치자금 또는 뇌물은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다.

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수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씨는 ‘영양가’ 없는 것만 골라서 털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씨는 ‘확실한 물증(영수증)’이 있는 내용만 털어놓음으로써 정치권 등에 끼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자신의 돈을 받은 정치인 등에게 “여차하면 불어버릴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니겠느냐는 뜻이다.

사실 이씨가 정관계 인사 가운데 박 의원이나 조 전 의원 등에게만 돈을 줬을 가능성은 적다. 이들 모두 이씨와 유달리 가깝게 지낸 사이가 아닌 데다 정치적 영향력도 그리 큰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씨가 정관계에 후원금을 주거나 로비를 했다면 ‘거물급’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이씨는 이들을 거론하지 않고 ‘외곽’을 때림으로써 자신에 대한 ‘보호’를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수사팀 관계자도 지난달 중순 “이씨는 계산에는 빠른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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