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등락률 세계최고 씁쓸한 한국증시

입력 2001-09-17 19:41수정 2009-09-19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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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한국은 미국과 둘도 없는 혈맹(血盟)이야.”

17일 주식시장 개장과 동시에 주가가 또다시 급락하는 것을 본 한 증시 관계자가 탄식조로 내뱉은 말이다. 미국이 테러로 큰 손실을 입게되자 ‘혈맹’인 한국도 주식시장에서 비슷한 규모의 손실을 봄으로써 고통을 함께 한다는 얘기였다.

물론 한번 웃어보자고 던진 얘기였지만 테러 사태 이후 한국 증시의 움직임을 다른 나라 증시와 비교해 보면 이 한 마디가 실없는 우스갯 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사태 이후 첫 개장일인 12일 주식시장에선 하한가라도 좋으니 팔겠다는 물량이 쏟아졌다. 주가지수는 12%나 떨어져 세계 최고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바로 다음날엔 정반대로 주가지수가 세계 최고의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쟁 위기가 고조되면서 시장은 또다시 급냉했다. 테러 사태 이후 단 나흘만에 사라져버린 시가총액은 35조원으로 미국이 이번 테러로 입은 손실액에 육박했다.

증권가에선 또다시 ‘냄비 증시의 한계’라는 탄식이 터져나왔다. 투자자들이 이번 사태에 보이고 있는 반응이 너무 즉흥적이고 과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불을 보듯 뻔한 마당에 이처럼 신속하게 반응하는게 당연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경제 개발기를 거치면서 세계의 조류에 발빠르게 대응하는 습관이 몸에 뱄고, 또 그 덕택에 ‘압축성장’이 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얘기다.

‘냄비 기질’이라는 비난과 ‘신속’ ‘민첩’이라는 긍정적 평가 둘다 틀린 분석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속전속결’식 투자성향이 강해질수록 주식시장은 점점 ‘건전하고 안정적인 투자처’로부터 멀어진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증시 관계자들은 “냄비 성향을 뿌리뽑기 위해선 투자자들의 의식이 바뀌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도록 주식시장의 시스템이 먼저 안정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처럼 머니게임이 판을 치는 시장에선 정상적인 투자보다는 한탕주의식 투기가 기승을 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예로부터 음식을 끓일 때 사용해온 그릇은 뚝배기다. 뚝배기는 냄비처럼 빨리 끓지도 않고 일단 뜨거워진 다음에는 쉽게 식지도 않는다. 한국인의 정서도 원래 이 뚝배기처럼 ‘은근’과 ‘끈기’가 특징이었다.

‘뚝배기 정서’를 ‘냄비 기질’로 급속히 변하게 만든 증시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정책당국이 임시처방으로 때울게 아니라 하루빨리 근본부터 손을 봐야할 시점이다.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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