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 휴스 칼럼]예측 불허의 ‘축구드라마’

입력 2001-09-05 18:45수정 2009-09-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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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오언
‘의외의 결과’야말로 우리를 축구에 흠뻑 빠져들게 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 나 자신 영국인이지만 내 조국이 독일 텃밭에서 독일에 5-1로 이기는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 아니 내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런 결과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분명 대한축구협회도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가지려던 독일과의 평가전이 위기에 처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인이나 영국인조차 상상할 수 없었던 결과인데 한국에서야 오죽했으랴.

오언은 저격수다. 냉정하고 움직임이 재빠른 특등사수다. 제라드는 크고 억센 팔방미인이다. 돌파, 태클, 패스에 능할뿐더러 슈팅까지 압권이다. 이제 겨우 21살인데도 그라운드에서 긴장하는 법조차 없다. 나는 앞으로 그가 잉글랜드축구의 길잡이로 성장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베컴은? 단언컨대 베컴은 제라드의 적수가 못된다. 베컴은 대중스타다. 부인이 팝가수인데다 그 자신 머리카락을 기괴하게 밀거나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하고 귀에는 보석을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물론 공정하게 말해 베컴이 열심히 하고 크로스패스나 프리킥에 능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라드야말로 팀의 중심이고 언젠가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 것이다.

이 한주간 지구촌 곳곳에서는 54개의 월드컵 예선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대부분 마지막까지 가슴 졸이는 접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일부는 느긋하게 월드컵 개막까지 남은 날들을 세고 있다.

잉글랜드는 독일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지만 아직 본선 진출을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날 오후 폴란드는 86년 이후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하는 감격을 맛봤다.

폴란드처럼 예상을 깨고 아프리카에서 본선 진출권을 움켜쥔 세네갈에서 그런 조치가 나왔다는 얘기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나이지리아 남아공 카메룬 튀니지 등 아프리카 본선 진출국들은 이제 긴 도전의 첫 걸음을 뗀 기분이었던 것 같다. 목표가 원대한만큼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북중미예선에서도 온두라스가 미국을 눌렀다. 이를 보면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축구 때문에 전쟁을 일으켰던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일부 잉글랜드 축구팬은 독일전을 제2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고 있다. 60년전에 끝난 일인데도 말이다. 이 때문에 지난주 뮌헨에는 무려 1100명이나 되는 무장 경찰이 투입돼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 비록 몇몇 훌리건들의 머리가 깨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서포터스들은 엄청난 결과에 너무 놀라 싸울 기력조차 잃어 버렸다.

다음날 영국 신문들은 “잉글랜드 축구에 새녘이 밝았다”고 대서특필했다. 반면 독일 신문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잉글랜드나 독일이 아무리 역사적인 경기를 치렀을지라도 이날같은 수비력으로는 2002월드컵에서 결코 프랑스나 아르헨티나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다. 경기의 흐름은 찰라같은 순간에 바뀌는 법이고 잉글랜드가 완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골폭죽이 터지기 바로 직전 사력을 다해 독일의 슈팅을 막아낸 골키퍼 데이비드 시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이후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또 한차례의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지만 이를 놓치고 말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역사적인 밤이 펼쳐질 것이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축구에 관한한 달갑지 않은 상대인데다 홈팀이 이미 2002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예약한 반면 브라질은 막차에 올라타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 할 것이다. 때문에 브라질의 전통이자 자랑인 삼바축구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로서는 이것이 잉글랜드의 승리만큼 중요한 문제다. 브라질은 펠레와 지코, 아울러 호나우두로 이어지는 유산을 갖고 있다. 브라질은 수세대에 걸쳐 ‘삼바축구’라는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했다. 그러나 이제 브라질은 부패한 축구협회, 승패에만 매달리는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감독에 내몰려 단지 월드컵을 향한 승점을 따내기 위해 ‘아름다운 유산’을 짓밟으려하고 있다.

이것은 슬픈 사실이다. 브라질은 1억6000만 인구중에 얼마든지 삼바축구 정수를 선보일 11명을 찾아낼 수 있다. 가끔 우리는 상업주의, 국수주의에 휘둘려 축구가 게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루디 d러 감독이 잉글랜드전이 끝난후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던 일화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d러 감독의 부친은 잉글랜드가 두 번째 골을 넣은 직후 심장마비를 당해 쓰러졌다. 잉글랜드 스벤 고란 에릭손감독은 나중에 얘기를 듣고 “루디한테 미안하다”며 “이같은 사건들때문에 축구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잉글랜드 축구 칼럼니스트>

robhu@compuser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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